메리 스크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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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플레처 스크랜튼 (Mary Fletcher Scranton, 1832년 ~ 1909년) 은 미국의 교육자이자 기독교 감리교회 선교사이다. 한국어로는 시란돈(施蘭敦)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과 수원시 위치한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창설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태생으로, 감리교 선교사윌리엄 스크랜튼의 어머니이다. 갑신정변 후 북아메리카 감리교회에서 파견된 5인의 여자 선교사 중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여성교육에 힘썼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본에서의 생활은 즐거우며 선교사들의 생활 조건도 훌륭하나 나는 내 민족(한국인)에게 가서 그들 속에서 살고 싶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1886년 메리 스크랜튼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을 세웠으나 학생을 구할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여성들은 모두 규방에서 집안일을 배우며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하층민 여성의 경우 매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남녀내외법도 스크랜튼의 큰 고민거리였다.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이들은 여학생들과는 얼굴을 맞댈 수 없었다. 이화학당에서 남자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학부형들은 앞을 다투어 딸을 데려가겠다고 법석을 피웠는데, 따라서 스크랜튼은 설교자와 청자 사이에 휘장을 치고 서로 그 모습을 바라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그 후 1905년 내한한 프레이에게 학교 일을 맡기고 계속 이화의 일을 도우며 매향, 달성, 공옥, 매일여학교를 세웠으며, 또 진명, 숙명, 중앙여학교들의 설립을 도우고 동대문 , 상동, 애오개 병원과 교회를 도왔다. 그리고 수원, 여주, 이천, 천안, 홍성 등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다가 1909년 10월 8일 대한민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크랜튼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한국에 묻혔는데 그 묘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위치한다. 스크랜튼은 대한민국 여성 신 교육의 효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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