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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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일본어: 丸山 眞男, 1914년 3월 22일 ~ 1996년 8월 15일)는 일본의 정치학자로서 일본의 정치사상사의 권위자이다. 1937년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생애[편집]

일본 제국 오사카에서 1914년에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마루야마 간지(丸山幹治)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군부와 관료주의를 비판했던 난바라 시게루에게 교육받았다. 1937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40년 동경제국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던 중 국가학회잡지에 기고를 시작해, 1944년까지 쓴 세 편의 논문이 「일본정치사상사연구」다. 1944년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평양에서 근무하다가 각기병(脚氣病)에 걸려 귀국하였다. 1945년 3월 군대에 복무하고자 머무르던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原子爆彈) 투하라는 사건과 함께 패전을 맞고서 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전쟁 이전의 일본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주제로 한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발표해 전후(戰後) 일본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자기기만적인 전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학생들에게 배척되기도 했다. 건강 악화로 1971년에 사임하였으며 1974년에 도쿄 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사상[편집]

일본 제국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이와나미 쇼텐의 「세카이」지에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기고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초국가주의[ultra nationalism]'를 맹렬히 비판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심층 분석하였다. 그가 비판한 초국가주의의 문제는 일본 제국의 통치 원리가 중립에 기초한 공익 추구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모든 가치를 천황제를 이용해 독점했다는 데 있었다. 즉 일본 제국의 전체주의란 개인의 자유라는 보편 가치의 침해가 아니라, 국가가 국가로서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개인의 자유나 민주주의를 보편의 가치로 신봉하지 않았고, 국가가 여러 가지 특수한 가치에서 중립을 견지해야 하는데도 초국가주의는 가치의 독점에 집중해 특정한 가치, 즉 ‘천황=지고(至高)한 선’이라는 것을 보편화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헤겔리안이었으며, 서구의 근대를 인류사의 절대 가치로 여겼고 이를 전 인류의 목표로 승화시켰다. 또한 동양에서 유일하게 중세를 거친 일본은 근대 또한 동양에서 유일하게 성취할 수 있다고 간주한 서구 중심주의적 역사관을 뼛속까지 체화한 인물이다.[1]

저서[편집]

  • 『현대일본정치론』、신경식 譯、고려원(고려원미디어)、1998년 10월
  •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김석근 譯、한길사、1997년 3월
  • 『사상사의 방법과 대상』、고재석 譯、소화、1997년 8월
  • 『일본의 사상』、김석근 譯、한길사、1998년 2월
  • 『日本政治思想史硏究』、김석근 譯、통나무、1998년 9월
  • 『충성과 반역』、박충석 譯、나남출판、1998년 11월
  • 『번역과 일본의 근대』、가토 휴이치 共著、임성모 譯、이산、2000년 8월
  •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후쿠자와 유키치 共著、김석근 譯、문학동네、2007년 4월
  •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김석근 譯、휴머니스트、2011년 2월
  • 『일본의 사상』、김석근 譯、한길사、2012년 10월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