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기에 우리가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냉혹하고 무서우며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라는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전쟁을 포기할 것인가?"
~ 버트런드 러셀[1]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영어: Russell–Einstein Manifesto)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 7월 9일 영국 런던에서 버트런드 러셀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 선언은 핵무기가 초래할 위험을 강조하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국제적 갈등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서명자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11명의 저명한 지식인과 과학자들이 포함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18일 사망하기 직전에 이 선언에 서명했다. 발표 직후, 자선가 사이러스 이턴은 선언에서 요구한 회의를 이턴의 출생지인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에서 개최하도록 후원하겠다고 제안했다. 1957년 7월에 열린 이 회의는 제1차 퍼그워시 과학 및 세계 문제에 관한 회의가 되었다.

배경

[편집]

최초의 원자폭탄 폭발은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북쪽 사막에서 일어났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도시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 팻 맨을 투하했다. 이 두 차례의 폭격으로 최소 10만 명의 민간인이 즉사했다.

1945년 8월 18일, 글래스고 포워드(Glasgow Forward)지는 버트런드 러셀이 나가사키 폭격 당일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원자폭탄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의견인 "폭탄과 문명"(The Bomb and Civilisation)을 게재했다. 여기에는 나중에 선언문에 나타나게 될 맥락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류의 앞날은 전례 없이 어둡다. 인류는 명확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 모두가 멸망하느냐, 아니면 최소한의 상식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다. 완전한 재앙을 피하려면 수많은 새로운 정치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2]

히로시마 폭격 소식을 듣고 임박한 핵 군비 경쟁을 목격한 후, 도덕적 근거로 맨해튼 계획을 떠난 유일한 과학자인 조지프 로트블랫은 "인류의 미래 전체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라고 언급했다.[3]

그 후 몇 년 동안 러셀과 로트블랫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및 다른 과학자들과 협력하여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으로 알려지게 된 내용을 작성하며 핵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5년 7월 9일 기자 회견

[편집]

선언문은 런던 캐스턴 홀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발표되었다. 회의의 의장을 맡았던 로트블랫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4]

기자단이 소수만 참석할 것으로 생각되어 기자 회견을 위해 캐스턴 홀의 작은 방을 예약했다. 그러나 곧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이 분명해졌고 그보다 더 큰 방을 예약했다. 결국 가장 큰 방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회의 당일 그곳은 전 세계에서 온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대표들로 가득 찼다. 선언문을 낭독한 후 러셀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했는데, 그중 일부는 처음에 선언문에 담긴 아이디어에 대해 공공연히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들은 러셀의 논리에 설득되었고, 이는 많은 경우 1면 기사로 다뤄졌던 언론의 훌륭한 보도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의를 시작했다.[4]

나는 시민들의 생존을 허용하는 데 동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서명자들이 표명한 경고를 전 세계의 모든 강력한 정부에 알리고자 한다.

개요

[편집]

선언문은 과학자들이 대량살상무기가 인류의 생존에 미치는 위험을 평가하는 회의를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 이 회의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한 핵무기 문제를 모든 사람과 정부로 확대했다.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로트블랫이 인용한 문구를 포함하여 특정 문구는 자주 인용된다.[5]:320

“ 인간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잊으라. ”

퍼그워시 회의의 시작

[편집]

선언문은 국제 회의를 촉구했으며, 원래 자와할랄 네루에 의해 인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는 수에즈 위기의 발발로 연기되었다. 애리스토틀 오나시스가 모나코에서의 회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되었다. 대신 1938년부터 러셀을 알고 지냈던 캐나다의 산업가 사이러스 이턴이 자신의 고향인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에서 회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은 퍼그워시 회의의 창립 헌장이 되었다. 첫 번째 회의는 1957년 7월 퍼그워시에서 열렸다.[3]

선언문 서명자

[편집]

인펠트를 제외하고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의 모든 서명자는 노벨상 수상자이다(로트블랫은 서명 당시에는 수상자가 아니었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 Russell, Bertrand (1955년 7월 9일). 《The Russell-Einstein Manifesto》. London.
  2. ↑ “Bertrand Russell, "The Bomb and Civilisation."”. 2020년 8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6년 2월 1일에 확인함.
  3. 1 2 Butcher, Sandra Ionno (May 2005), “The Origins of the Russell-Einstein Manifesto”, 《Pugwash History Series》 1: 1–35
  4. 1 2 Rotblat, Joseph (1982). 《Proceedings of the first Pugwash Conference on Science and World Affairs》. London: Pugwash Council. 6쪽. OCLC 934755212.
  5. ↑ Russell, Bertrand (2003). 《The Collected Papers of Bertrand Russell: Man's Peril, 1954–55》. London: Routledge. ISBN 978-0-415-09424-5.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