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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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세나
Dhatusena
판드얀 마우리아 제후국 집정총독
모리안 아누라다푸라 대공국 대공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 초대 군주
재위 452년 ~ 455년 (집정총독)
455년 ~ 463년 (대공)
463년 ~ 473년 (군주)
후임자 카샤파 1세
신상정보
출생일 429년
출생지 판드얀 드라비다 왕국 아누라다푸라
사망일 473년 (44세)
사망지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 아누라다푸라에서 장남 카샤파 왕자왕실 쿠데타로 시해됨.
왕조 마우리안 가
가문 모리안 왕가
배우자 왕비 1명(아누라다푸라 천가 출신)
후궁 1명(판드얀 드라비다 옛 왕가 왕족 출신)
자녀 카샤파 1세(적장자), 모갈라나 1세(서차자)
종교 불교

다투세나(Dhatusena, 429년 ~ 473년)는 판드얀 드라비다 왕국불교도 정치군인으로 활약을 한 군벌 정치가 출신이며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의 초대 군주이다.

생애[편집]

왕국 명문가 자제 출신 가운데 비교적 이른 관직 출사[편집]

그는 본래 판드얀 드라비다 왕국의 명문가에서 출생한 불교도 군벌 정치가로서 이미 17세 시절이던 446년에는 판드얀 드라비다 왕국관직에 출사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청년 장군 시절부터의 권력 야욕과 군사 쿠데타 이후 군주가 되기 위한 11년의 과도정권을 동반한 여정[편집]

446년 17세 나이로 관직에 출사한 그는 이듬해 447년에 결혼을 하였고 2년 후 449년장군(將軍)이자 불교파 군벌정치계 영수의 지위에 올랐는데 그 시기에서부터 자신의 군사 병력을 증강하다가 3년 후 452년에 23세 나이로 군사 쿠데타를 감행하여 당시 국왕(國王)이었던 피티야 군주(Pithiya 君主)를 시해하였고 급기야는 판드얀 드라비다 왕국을 멸국하고 나서 다투세나 자신이 판드얀 마우리아 제후국을 성립하여 집정총독(執政總督)이라는 직위에 취임함으로써 452년부터 455년까지 3년을 판드얀 마우리아 제후국 집정총독의 직위에 재임을 하였으며 455년에는 판드얀 마우리아 제후국을 스스로 허물고 모리안 아누라다푸라 대공국을 건국하여 대공(大公) 보위에 즉위하여 455년부터 463년까지 8년을 대공으로 재위하였고 463년에는 모리안 아누라다푸라 대공국을 또다시 스스로 허물고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을 재건립하여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의 초대 군주로 보위에 등극하였다.

보위 등극 10년 후의 참극(慘劇)이라는 그의 자가 비극(自家 悲劇)[편집]

463년부터 473년까지 10년간을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의 초대 군주로 재위한 그는 불교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종전의 불교계 군벌정치 체제를 답습하였지만 슬하 2남을 둔 그는 군주 보위에 있던 중에 왕비후궁의 상(喪)을 모두 치렀고 군주 보위에 앉아 있는 내내 보위 즉위 1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슬하 2남 가운데에서 단 1명의 아들이라도 골라다가 왕태자(王太子) 책봉을 할 처지에 이르렀는데도 왕태자 책봉을 거행할 기미조차 드러내지 않고 내부에서 암암리에 감시하는 눈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야간 주색(夜間 酒色)을 즐기는 등 반(半)은 유희(遊戱)로 인(因)한 향락(享樂)에 매취(魅醉)되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그를 암암리에 감시하던 이들 가운데에서는 그의 적장자(嫡長子)인 카샤파 왕자(王子)도 있던데다가 카샤파 왕자가 점점 자신의 군사 병력을 증강하고 나서 부왕(父王)인 그를 배신하여 끝내 참(斬)하는 사건이 일어난즉 다투세나 군주가 보위에 등극한지 10년째의 시기이던 473년카샤파 왕자왕실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다투세나 군주가 적장남(嫡長男)인 카샤파 왕자왕실 쿠데타로 인하여 시해되는 비극이 터지는데 부왕 다투세나 군주를 시해한 카샤파 왕자왕실 쿠데타 직후 즉각 보위에 오르지는 않고 473년부터 479년까지 6년을 대리집정(代理執政)으로 재임하다가 479년에 비로소 바라트 스리 랑카 모리안 세일론 아누라다푸라 신할레스 왕국의 제2대 군주 보위에 등극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