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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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來恒, Lai Heng, ? ~ 678년 11월 18일[1][2])은 중국 당나라 전기에 활동했던 관료로, 당 고종 연간에 재상을 지냈던 인물이다.

출신 배경[편집]

내항은 강도(江都, 현 장쑤 성 양저우 시현급시 장두 시) 출신으로, 본적은 남양군 신야현(南陽郡 新野縣, 현 허난 성 난양 시 신예 현)이다. 그의 아버지 내호아수나라의 대장으로, 영국공(榮國公)의 작위에 봉해졌었다. 618년, 수나라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수 양제가 강도에 있는 동안, 우문화급쿠데타를 일으켜 수 양제를 타도했다. 이 과정에서 우문화급은 다수의 고급 관료들을 처형했는데, 이때 내호아도 대부분의 일족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오직 내항과 그의 동생 내제만이 죽음을 면했다.[3][4]

당 고종 시대[편집]

내항과 내제 두 사람은 모두 문학에 재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들에 대한 평판은 비슷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내제의 경력에 대해서는 내항의 경력보다 가장 더 많이 알려져 있다. 655년에 내제가 벌써 재상이었을 무렵에 당 고종의 두 번째 아내인 무황후(훗날의 무측천으로 유명해진다)의 지위 승진에 대한 유명한 반대 입장 때문이었다. (내제는 무황후에 대한 그의 반대 입장으로 인해 결국 외지로 유배되었고, 662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3][4]

내항의 경력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676년 당시, 그가 문하성(門下省)의 차장급에 해당하는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 해 3월 5일에 그는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에 제수되면서, 실질적인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재상으로써의 그의 행적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알려진 것은 그 해 12월 25일에 그가 하남도 대사(河南道大使)에 임명되어 해당 지역의 순무(巡撫)를 담당했던 것이 전부이다. 그는 678년에 사망하였고, 그 무렵까지도 여전히 황문시랑 겸 동중서문하삼품의 재상 직책에 있었다.[2]

출전 및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