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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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원(南忠元, ? ~ ?)은 조선 시대 중기문관 관료정치가이고, 본관고성(固城)이며, 아버지는 판결사(判決事)를 지낸 남득정(南得正)이다.

생애[편집]

덕흥군 이초의 사위이자 명종의 이복 조카사위이며 선조의 이복 매제이기도 한 그는 선조 임금 때 음서로 천거되어 감찰(監察)을 역임[1]하였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청양현감(靑陽縣監)으로 재임 당시 일본군대에게 잡혀 포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2] 1601년(선조 34) 일본과 강화를 맺고 그해 풀려났다.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 남득정(南得正)
    • 부인 : 이혜옥(李惠玉, 1558년 - 1599년) - 덕흥대원군의 서녀(庶女), 선조의 서매(庶妹)
      • 장남 : 남렴(南濂, 1573년 - ?년)
      • 차남 : 남연(南演, 1606년 - ?년)
      • 삼남 : 남징(南澂, 1609년 - ?년)
      • 장녀 : 남애숙(南愛淑, 1578년 - ?년) - 남양인 홍이중(洪頤中)에게 출가
      • 차녀 : 남종정(南終正, ?년 - ?년) - 변급(邊伋)에게 출가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58책 90권 1장 1면,【영인본】23책 260면 - 1597년 7월 3일 3번째기사 : 사헌부가 건의한 임국로·유사원·남충원의 인사문제를 재가하다.
  2.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2장 2면,【영인본】 23책 303면 - 1597년 10월 2일 : 적에게 사로잡힌 남충원과 신택의 가족을 구출해 보도록 지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