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장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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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金稹, 1292년[1] ~ ?)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초명은 김보문(金普文)[2],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사원(金士元)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문과에 급제[3]한 후 충숙왕(忠肅王)조에 성균좨주(成均祭酒) 겸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가 되었다.[2]

1340년(충혜왕 후 원년) 성균시(成均試)를 주관해 양윤식(梁允軾) 등을 뽑았으며[4], 1342년(충혜왕 후 3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서 문과의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자을(李資乙) 등 33명에게 급제를 하사했다.[5]

시호는 장영(章榮)이다.[6]

가족 관계[편집]

  • 증조 - 김대린(金大鱗)[2] : 증(贈)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병부사(判兵部事)
    • 조부 - 김련(金璉, 1215년 ~ 1291년) : 첨의시랑찬성사(僉議侍郞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양간공(良簡公)
      • 아버지 - 김사원(金士元, 1257년 ~ 1319년) : 도첨의시랑찬성사(都僉議侍郞贊成事)·상호군(上護軍), 정경공(貞景公)
      • 어머니 -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수문관대사학(修文館大司學)·제수사(提修史)·판판도사사감찰사사(判版圖司事監察司事),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 1243년 ~ 1306년)의 5녀[2]
        • 부인 -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상장군(上將軍) 권윤명(權允明)의 딸[2]
          • 장남 - 김광리(金光利, 1310년 ~ ?)[2] : 전리판서(典理判書)
          • 차남 - 김영리(金英利, 1314년 ~ ?)[2] :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약채(金若采)의 조부
          • 3남 - 김성리(金成利, 1324년 ~ ?)[2]
          • 4남 - 김안리(金安利, 1328년 ~ ?)[2] : 전법판서(典法判書)
          • 5남 - 김천리(金天利, 1333년 ~ ?)[7] : 밀직부사(密直副使), 김연(金緣, 1487년 ~ 1544년)의 5대조
          • 첫째 사위 : 박덕룡(朴德龍, 1310년 ~ ?)[2] : 전리판서, 박형(朴形, ? ~ 1398년)의 아버지
          • 둘째 사위 : 한천(韓蕆, 1325년 ~ ?)

각주[편집]

  1. 『김진 준호구』에 의하면 계유년(1333)에 42세였다고 한다.
  2. 『김진 준호구』(1334)
  3. 일반적으로 정유년(1297) 가을의 제술과(製述科)에 급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때 김진은 6세에 불과했으며, 『김진 준호구』의 실물을 보면 '정(丁)' 바로 뒤의 1자는 뚜렷하지 않다. 14세기 초에 천간이 '정(丁)'이면서 가을에 문과가 있었던 해는 정축년(1317) 뿐이므로, 실제로는 이해의 문과 급제자로 보인다.
  4. 이때의 관직이 무엇이었지는 불명이다.
  5. 『고려사』「선거지」
  6. 『김극핍 신도비명』(1559)
  7. 『김진 준호구』에서는 나이만 나오고 이름이 나오지 않으므로, 『씨족원류』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