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학 (18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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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학(1871-1905)는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항일운동가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고 동료들과 계획하지만 누설되어 자결하였다.

생애[편집]

김봉학은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에 기여하였다. 김하락의 부하 중 한명으로 경기도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평양 진위대에서 병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한성으로 소환되어 시위대 제3대대 2중대에 배치되었다.[1]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민영환, 조병세 등이 순국하자, 김봉학은 분노하였고, 흐느껴 울며 “대대로 녹을 먹던 신하로서 순국함은 당연하며, 나 또한 군인으로서 6년이나 지내면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원수인 왜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라고 말했다. 동지들고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누설되어 자결하였다.[1][2] 고종 황제는 김봉학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장비(葬費)를 지원해주었다.[3] 사후에는 비서원승에 추증되었다.[1] 하지만, 통감부에 의해 그의 관한 서적은 모두 금지되었다.[4]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2]

각주[편집]

  1. “김봉학(金奉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년 7월 1일에 확인함. 
  2. “김봉학”. 2022년 6월 7일에 확인함. 
  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022년 6월 7일에 확인함. 
  4.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022년 7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