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사 관유물 불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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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사 관유물 불하사건(開拓使官有物払下げ事件)은, 홋카이도 개척사 장관이었던 구로다 기요타카가 개척사의 관유물불하 과정에서 여론의 호된 비판으로 불하가 중지된 사건을 말한다. 메이지 14년의 정변(1881년)의 원인이 되어 이토 히로부미오쿠마 시게노부를 정부에서 밀어내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한 국회개설의 조칙을 반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불하 결정까지[편집]

개척사는 북방개척(홋카이도)을 위해 1869년 7월(메이지 2년)부터 1882년 2월(메이지 15년)까지 설치된 관청이다. 구로다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국력신장을 위해 홋카이도의 개발에 진력해야 한다는 건의를 제출한다. 그러자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1871년 9월 19일에 10년간 1000만냥 총액의 대규모 예산계획을 가진 개척사 10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구로다는 미국인 호레스 케프론(Horace Capron) 등의 외국인을 불러 정책의 조언과 기술의 전수를 요청했다. 개척사는 풍부한 예산을 활용하여 다양한 개척사업을 추진했지만, 그 모든 사업을 완수하기에는 부족하였다. 따라서 측량 및 도로 등의 기초적 사업을 서둘러 일단락짓고 산업육성에 중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