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량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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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이전의 장지량

장지량(張志良, 1924년 12월 15일 ~ )은 대한민국군인, 외교관, 정치가이다. 본관은 흥덕(興德)이고 호는 석은(石隱)이며 전라남도 나주 출생이다. 박정희 정권때 제9대 공군참모총장(중장)과 제 10대 국회의원과 성우회 회장을 지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60기), 미 공군대, 국방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48년경, 당시 공군작전부장이던 장지량은 강문봉(일본육사 59기) 육군본부 작전국장을 찾아가 비행장마다 경비병력 10명 무전기 자동차 각 1대와 무전병 운전병을 파견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강문봉은 이를 거절했다. [1]

5.16 혁명 직후 군인신분으로 대한중석 사장을 역임하였다. 워싱턴 주재 무관을 지냈고, 예편 후 1968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 부위원장에, [2] 1969년에는 駐에티오피아 대사에 임명되었다. [3] 온화한 성품으로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와 친분을 두텁게 하여, 한국 문제에 관한 1972년 국제연합 총회 때, 에티오피아를 "기권"에서 "지지"로 돌려 놓았다. 1973년 5월에는 駐필리핀 대사로 영전하였다.

그는 최근 "한국전쟁시기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폭격을 막았다"는 자신의 주장과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2009년 7월 24일 "팔만대장경 지킨 ‘빨간 마후라’ 지하서 통곡"[4]에서 해인사 폭격을 막은 주인공은 장지량이 아닌 김영환 장군의 업적이라는 유가족의 주장이 있다.

부인 송원희와 사이에 3남2녀가 있다. 그 중에는 언론인인 장대환이 있다. [5]

학력

주석

  1. “군 어제와 오늘<75> 창군 비화(9) 미 전투기지원 외면 「날개 없는 공군」 창설”. 경향신문. 
  2. “行政改革委副委長 張志良씨 내정”. 동아일보. 政府는 공석중인 行政改革調査委員會 부위원장에 前 空軍參謀總長 張志良예비역중장을 내정한 것으로 五日 알려졌다. 
  3. “張志良씨 임명 결 駐이디오피아大使”. 매일경제신문사. 
  4. “팔만대장경 지킨 ‘빨간 마후라’ 지하서 통곡”. 중앙일보. 
  5. “張志良 駐씨「필리핀」”. 동아일보. 3면. 
전임
박원석
제9대 공군참모총장
1966년 8월 1일 ~ 1968년 8월 1일
후임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