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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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1950년 ~ )는 대한민국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박옥희는 10세 때 아버지의 사망을 겪었고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후 신문사에 입사하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를 처음으로 혹독하게 경험하였고 직장 내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에 맞섰다. 서울신문에서 1972년부터 7년 동안 사진기자로 근무하였고 같은 신문사 소속의 기자와 결혼하였다. 세 자녀를 두었고 배우자가 미국 특파원으로 나가면서 미국 생활을 잠시 했다가 1990년대 중반에 귀국하였고 이후 여성 언론 운동에 투신하였다. 박옥희가 발행인으로 참여한 이프2001년 한국잡지협회의 '10대 우수 잡지'에 선정되기도 했다.[1][2][3][4][5][6][7]

2011년박영숙의 제안으로 시민 단체 <살림정치 여성행동>이 출범하였는데, 박옥희는 2013년에 <살림정치 여성행동> 대표로서 범야권 연석회의에 참석하여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수사 방해 의혹을 밝히는 특검 요구'에 동참하였다.[8][9][10][11]

학력[편집]

경력[편집]

상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미경. 페미니스트 계간지 ‘이프’ 박옥희 발행인. 동아일보. 2002년 10월 8일.
  2. 김관명. 헌재 '간통죄 합헌' 결정. 한국일보. 2001년 10월 25일.
  3. 강이종행. "여신의 시대, 전쟁은 없었다". 오마이뉴스. 2002년 5월 13일.
  4. 임현선. "추천인사 명단 무시하면 정당 불신임 운동". 오마이뉴스. 2004년 1월 7일.
  5. 송현숙. 여성의 이름으로…‘안티’를 키워냈다. 경향신문. 2004년 3월 22일.
  6. 김성재. 여성계 ‘현정은 지지’ 논란 . 한겨레신문. 2004년 3월 31일.
  7. 송현숙. 시도는 활발…아직 못핀 ‘여성주의’. 경향신문. 2004년 6월 7일.
  8. 김희선.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를 잇다. 여성신문. 2011년 9월 30일.
  9. 김희선. “살리는·돌보는·나누는 정치 펼치자!”. 여성신문. 2011년 10월 7일.
  10. 윤정숙. ‘왕언니’들의 살림정치 . 한겨레신문. 2012년 1월 17일.
  11. 범야권 연석회의 “대선 개입·수사 방해 특검 도입하라”. 한겨레신문. 기사입력 2013년 11월 12일. 최종수정 2013년 11월 13일.
  12. 김성재. “남녀 함께 읽는 잡지가 되겠습니다” . 한겨레신문. 2004년 2월 8일.
  13. 영상물등급委, 소위원회 위원 58명 등 위촉 外. 한국일보. 2004년 6월 21일.
  14. 김경희. '이화언론인'에 김선주.김혜경.박옥희 씨. 연합뉴스. 2004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