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
김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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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6년 1월 29일 조선 한성부 |
사망 | 1922년 7월 4일 중화민국 상하이 시 | (76세)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대한제국 → 일본 제국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직업 | 정치인, 관료, 독립운동가 |
작위 | 1910년 남작 작위 |
부모 | 김응균 (부친) |
자녀 | 김의한 |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
생애
세도가인 신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얼이었기에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 정부로부터 조선귀족으로 지정되어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틈타 의친왕을 중화민국의 상하이로 망명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것이 사전에 발각되어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가 임시 정부 고문을 맡아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와 함께 한국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로 인해 1922년에 노환으로 자연사하였고, 그의 장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사후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남작 작위를 일제에 '공식적으로' 반납하지 않았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보류했다. 김가진의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로부터 각각 독립장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
가계
- 증조부 : 부평부사 증이참 김세근(金世根), 영천군수 동지중추부사 김도순(金道淳)의 아들
함께 보기
참고 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정정화,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