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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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삼성 라이온즈KBO 리그에 참가한 14번째 시즌이다. 우용득 감독이 팀을 이끈 마지막 시즌으로, 이종두가 주장을 맡았다. 한편, 우용득 감독의 부임 첫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90년대 들어 최고의 성적을 올렸으나 다음 해인 1994년부터 간판급 선수들의 부상 뿐 아니라 개인주의가 선수단에 전념되면서 팀분위기가 모래알처럼 흐트러져[1] 2년 연속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며 이 때문에 우용득 감독이 해당 시즌 후 3년 계약이 종료되면서 자연스럽게 물러났고 그 해 경북 전국체전 대학,일반부 야구경기는 경북 지역에 이렇다할 정규 구장이 없어 당시 삼성의 홈구장이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됐으며[2] 고등부 야구경기는 경산 볼파크에서 열렸다. 아울러, 투수진 운용의 축이었던 박충식 - 전년도 6구원승 9세이브를 기록한 최한경 - 전년도 10개 홈런을 쳐 새세대 거포로 각광받았던 김한수 등이 방위로 입대하여[3] 선수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들 중 최한경은 그 해(95년) 선발로 키우려 시도했던 선수들이 무너지자 코칭스태프가 본인(최한경)을 선발 기용하는 강수를 뒀으며[4] 갑작스런 선발 전향에도 7승(6선발) 4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ERA가 5.70으로 부진한 데다 130km로 직구 구속이 떨어졌고 1996년에는 1승(구원) 2패에 그쳤으며 다음 해인 1997년 어깨부상을 당하여 이 때부터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고 1999년 타자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같은 해 말 삼성에서 방출된 뒤 LG에서 타자로 1군 복귀를 시도했지만 1년 만에 방출되어 은퇴했다.


선수단[편집]

각주[편집]

  1. 최영호 (1999년 3월 13일). “[삼성라이온즈18년 .6] 우용득 감독”. 영남일보. 2021년 6월 25일에 확인함. 
  2. 이영일 (1995년 10월 1일). “포항 전국체전 내일 팡파르”. 한겨레신문. 2021년 9월 30일에 확인함. 
  3. 이제훈 (1994년 10월 31일). "방위입대 손실을 막아라". 한겨레신문. 2022년 4월 12일에 확인함. 
  4. “OB BEARS「서울 찬가」합창 심정수 3점포 나란히 1.2위 신세대 방망이쇼”. 경향신문. 1995년 5월 1일. 2022년 4월 12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