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장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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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和嶠, ? ~ 292년)는 서진의 관료로, 장여(長輿)이며, 여남군 서평현(西平縣) 사람이다. 조위태상 화흡의 손자이자 이부상서(吏部尙書) 화유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명성이 있었고, 사람됨이 기품 있고 진중하여 칭송이 있었다. 평소에 하후현의 인품을 흠모하였다.

황문랑(黃門郞)을 지내다가 중서령(中書令)으로 전임되었고, 이후 상서(尙書)가 되었다. 민회태자가 책봉되었을 때 소보(少保)가 되었고,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원강 2년(292년)에 죽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추증되었다.

화교는 때를 잘 맞추어 재산을 긁어모아 이나 에 필적할 정도였으나, 성품은 매우 인색하였다. 두예는 화교의 행태를 보고 수전노라고 비방하였다.

출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