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 이름 | 저자 | 권수 |
|---|---|---|
| 사기 | 전한·사마천 | 130 |
| 한서 | 후한·반고 | 100 |
| 후한서 | 유송·범엽 | 120 |
| 삼국지 | 서진·진수 | 65 |
| 진서(晉書) | 당·방현령 등 | 130 |
| 송서 | 양·심약 | 100 |
| 남제서 | 양·소자현 | 59 |
| 양서 | 당·요사렴 | 56 |
| 진서(陳書) | 당·요사렴 | 36 |
| 위서 | 북제·위수 | 114 |
| 북제서 | 당·이백약 | 50 |
| 주서 | 당·영호덕분 등 | 50 |
| 수서 | 당·위징 등 | 85 |
| 남사 | 당·이연수 | 80 |
| 북사 | 당·이연수 | 100 |
| 구당서 | 후진·유후 등 | 200 |
| 신당서 | 송·구양수 등 | 225 |
| 구오대사 | 송·설거정 등 | 150 |
| 신오대사 | 송·구양수 | 74 |
| 송사 | 원·토크토 등 | 496 |
| 요사 | 원·토크토 등 | 116 |
| 금사 | 원·토크토 등 | 135 |
| 원사 | 명·송렴 등 | 210 |
| 명사 | 청·장정옥 등 | 332 |
| 신원사* | 중화민국·커샤오민 등 | 257 |
| 청사고* | 중화민국·자오얼쑨 등 | 536 |
남조의 진나라를 다룬 역사서에 대해서는 진서 (남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진서(晉書)는 중국 진나라(晉)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이다. 이십사사중에 하나이다. 648년 당나라 태종 때에 방현령(房玄齢), 이연수(李延壽) 등 20여명의 학자가 편찬한 책으로, 서진(265년 ~ 316년)과 동진(317년 ~ 418년)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다.
총 130권으로, 제기 10권, 열전 70권, 지 20권, 재기(載記) 30권이다.
목차 |
[편집] 개요
현무문의 변에서 형 황태자 이건성을 죽이고, 제위를 오른 당태종 이세민은 방현령을 총책임자로 하여 미편찬된 역사서를 편찬을 명하여 북제서(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수서(隋書), 주서(周書), 진서가 편찬 되었다. 당 태종은 왕희지(王羲之)를 존경하여, 진서 왕희지전(晉書 王羲之傳)은 직접 집필하였다. 기존의 정사인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등은 모두 개인이 편찬한 사서를 후에 정사라고 정한 것이었지만, 태종이 명령한 진서가 편찬 된 이후는 사서 편찬은 국가 사업이 되어, 멸망 전왕조의 사서를 편찬 하는 것이 정통 왕조의 의무가 되었다.
기록은 사마의(司馬懿)로 부터 시작되어 동진의 마지막 황제 공제 사마덕문(恭帝 司馬德文)까지만 적혀있지만, 동진이 멸망한 뒤에 사망한 혁련발발(赫連勃勃)의 기록이 들어가 있다.
[편집] 평가
진서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많다.
유지기(劉知幾)는 진서가 어림(語林), 세설신어(世説新語), 유명록(幽明録), 수신기(捜神記)등 책에 기록된 괴이한 기록한 것을 지적하고, "분량마저 많으면 좋은자료 수집이 넓고 좋다고 하는 태도다. 소인은 기쁘게 할 수 있겠지만, 군자가 비웃고 있다."라고 매우 엄하게 비난 하였다. 또 구당서와 신당서의 방현령전 평에도 진서를 편찬한 사관은 문학인이 많았기 때문에, 괴상한 기록을 적고, 이상한 말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그 기술 태도는 기발하고, 정확한 사실인지 판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존의 사서와 비교하면 개인이 집필하고 편찬한 사서와 달리 여려명의 편찬자가 있어 전후에 모순되된 내용이 있는 기록도 있다.
한편으로 책부원구(冊府元亀)의 평은 "전대의 기록을 크게 고증하여, 잔존하는 기록을 많이 찾아, 잡초를 베어 내도록 중요한 부분을 뽑아내었다."라고 하여 진서의 사료 수집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진서는 사서로서의 평가는 낮지만 삼국지에 지리지가 없어 삼국지 애호가의 사이에서는 지리지에 한해서 진서의 기록을 참고하는 경향이 있다. 또 삼국지에는 사마의의 열전이 없기 때문에 참고하는 일이 많다.
[편집] 구성
총 130권으로, 제기 10권, 열전 70권, 지 20권, 재기(載記) 30권이다.
[편집] 특징
당태종 이세민이 친히 인물을 평가한 대목들이 있다. 制曰로 시작한다.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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