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형가(荊軻, ?~기원전 227년) 위(衛)나라 출신으로 중국 전국시대의 자객이며 자는 차비(次非)[1]이다. 진(秦)시황제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다.

생애 [편집]

형가는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출생하였다.[2] 그 후 전광을 통하여 연나라태자 (丹)을 소개받았으며, 태자 (丹)에게서 진(秦)나라 영정을 암살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형가는 부탁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연나라 곡창지대의 지도와 당시 진(秦)나라 사람으로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 중이던 번오기의 목, 그리고 무사 한 명을 요구하였다. 태자 (丹)은 형가의 요구를 수락하였다. 태자 (丹)에게 승낙을 받은 형가는 번오기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번오기에게서 목을 받아내었다.

다만, 형가는 처음에 요구하였던 조건 중 무사를 절친한 벗이자 검객이던 노구천(魯句踐)과 함께하기로 생각하였는데, 노구천(魯句踐)이 당도하지 않아서 연 태자 (丹)이 추천한 무사 진무양(秦舞陽)과 진왕 정의 암살 길을 떠났다.

태자 (丹)과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흰 상복으로 갈아입고, 역수(易水) 부근까지 전송을 나와 제를 올릴 때, 형가의 친구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그의 심정을 노래하였다.

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 물은 차구나)
壮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이 시구는 사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의 하나로, 인구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것을 들은 선비들은 모두 그 처절한 축과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하늘로 곤두섰다고 한다. 이윽고 형가는 배를 타고 떠나며, 끝내 뒤를 뒤돌아 보는 일이 없었다.

진나라에 당도한 형가는 진(秦)시황제 영정에게 연나라의 지도를 헌상하는 형식을 취하며 무사 진무양(秦舞陽)과 함께 진(秦)왕 영정을 찾아뵈었다. 무사 진무양(秦舞陽)이 왕의 단 앞에서 떨자 형가는 직접 진(秦)왕 영정에게 연나라 지도를 해석해주겠다 하며 진시황제에게 가까이 접근했고, 미리 지도 속에 준비해두었던 검으로 진(秦)왕을 암살하려 시도하였으나 영정이 진무양(秦舞陽)을 보고 낌새를 채 결국 실패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관련 항목 [편집]

주석 [편집]

  1. 장화(張華), 《박물지(博物志)》 권7
  2. 史記, 刺客列傳 第二十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