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팔가르 해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트라팔가르 해전
(나폴레옹 전쟁의 일부)
트라팔가르 해전을 묘사한 그림. J.M.W.터너작(유화,1806~1808)
트라팔가르 해전을 묘사한 그림. J.M.W.터너작(유화,1806~1808)
날짜 1805년 10월 21일
장소 스페인 남서 해안 트라팔가르 곶
결과 영국의 압승
교전국
영국 영국 Flag of France.svg프랑스 제1 제국
Flag of Spain (1785-1873 and 1875-1931).svg 스페인 왕국
지휘관
허레이쇼 넬슨 제독 † 피에르 빌뇌브 제독
병력
27척 프랑스: 18척
스페인:15척
피해 규모
전사 449명
부상 1,246명
포로:7,000명
21척 나포, 1척 침몰

프랑스:전사 2,218명
부상 1,155명
스페인:전사 1,025명
부상 1,383명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는 나폴레옹 전쟁기간 중 1805년 10월 21일에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을 상대로 영국해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스페인 남서 해안 트라팔가르 곶 에서 영국의 왕립해군 27척이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 33척을 기습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스페인 연함함대는 22척을 잃었지만, 영국은 1척도 잃지 않았다.

영국해군을 대승으로 이끈 제독 허레이쇼 넬슨 은 전투 중 전사했지만, 그는 영국의 위대한 해전영웅으로 길이 기억된다.

19세기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이 해전은 제3차 대프랑스 동맹때 벌어졌다. 영국의 극적인 승리로 18세기부터 이어져온 영국의 제해권을 굳혔다. 이 전투 후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단념하고, 영국의 동맹국 프로이센을 공격했다.

2005년 영국은 이 전투의 200주년을 기념하여 축제 트라팔가르 200 을 열었다.

배경[편집]

1805년, 유럽 대륙은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프랑스 제1제국의 지배 하에 놓여 버렸지만, 해상은 여전히 영국이 장악했다. 영국은 해상 봉쇄를 통해 프랑스의 해군력을 억제하고, 영국 본토 침공을 막았다.

나폴레옹은 영국 본토 상륙 작전을 엄호하고자 이 해상 봉쇄를 돌파하라고 명령했다. 프랑스와 스페인(당시, 나폴레옹의 지배 하에 있었던)은 연합 함대를 편성, 해상 봉쇄를 돌파하고 불로뉴 항에 집결된 35만 원정군으로 영국 본토 상륙을 엄호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영국은 이를 허레이쇼 넬슨의 함대를 보내 맞섰다.

과정[편집]

영국 함대는 넬슨 의 ‘빅토리’(HMS Victory)를 기함으로 하는 27척의 전열함이 주축이었고, 프랑스의 제독 피에르 빌뇌브 가 이끄는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부상테르’(Bucentaure)를 기함으로 하는 33척의 전열함이었다. 넬슨은 적의 대열을 갈라놓기 위해 2열 종대로 돌진하는 ‘넬슨 터치’라고 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빌뇌브도 다종렬에 의한 가르기 작전을 예측하여 돛에 많은 저격병을 배치했다.

연합 함대는 수적으로는 우위였으나 스페인 해군과 섞여 지휘 계통이 복잡하고, 사기나 숙련도가 낮고, 함재포의 발사 속도가 1발/3분 이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사기도, 숙련도도 높고, 발사 속도도 1발/1.5분 으로 우수했다. 결국 연합 함대는 격침 1척, 포획 파괴 21척, 전사 3,200명, 포로 7,000명 이 었고, 제독 빌뇌브 또한 생포됐다.
영국 측은 상실함 0, 전사 400명, 부상 1,200명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피해로 끝났지만, 넬슨은 교전 중 프랑스측 총탄에 저격됐으며, 피격후에도 4시간동안이나 지휘를 계속했지만 결국 다음의 말을 남기고 절명했다.[1]

신이여 감사합니다. 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ibbert. Nelson. p. 376.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