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간도

문서 내용이 다른 언어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문서는 다음 위키프로젝트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지적[편집]

(조선족이라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증거없는 말.한국에 야말로 한국인이라는 조선족인이 살고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222.161.167.178)(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서명을 하세요.blues_music2 2008년 3월 24일 (월) 17:54 (KST)[답변]

간도는 한국땅?[편집]

독도와 대마도 토론란에 올렸습니다만...같은 구조입니다.

신라 고려 조선때 독도가 조선땅이었다고 하더라도...한일합방이 되면서, 독도는 조선 본토와 함께 일본땅이 되었죠.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땅이었습니다. 아닌가요?

따라서, 신라 고려 조선의 논거들은 모두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해방 이후에 누구땅이냐...국제법적으로...이게 관건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자세하게 논한 외부자료가 있나 모르겠습니다.

대마도도, 같은 구조라고 봅니다. 국제법적으로.

즉, 간도는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영토가 분명했으며, 이는 다시 중국으로 영토가 넘어갔죠. 따라서, 한국 영토는 될 수 없습니다. 국제법적으로. -- WonRyong (토론) 2008년 7월 28일 (월) 00:38 (KST)[답변]

독도 토론에서 썼습니다만, 마찬가지 역설입니다. 하지만 다른 반론을 하겠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미 일본은 서양의 질서에 편입하였고, 당시의 국제법에 따라 한국을 병합해 나갑니다. 그때 간도는 영토분쟁 지역이었으며, 청의 영토인지 조선의 영토인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백두산정계비인데, 이미 일본이 훼손하였기 때문에 증거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 이전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을 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보호하는 나라는 보호받는 나라에게 불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영토분쟁 지역인 간도를 대한제국의 이익에 반하여 청나라에 매각하였으므로 제2차 한일협약의 성립과 관계없이 해당 매각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한일협약이 성립했다면 앞서 말한 논거에 따라 보호받는 나라에게 불리한 계약이므로 무효이며, 한일협약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제3자가 남의 물건을 팔았으므로 무효가 됩니다. 이에 따라 당시 간도의 점유자였던 대한제국이 1차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당시 점유국은 청나라가 아니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7월 28일 (월) 10:09 (KST)[답변]
이때 중요한 점은 해당 영토를 당시의 주권국 또는 당시의 주권국을 계승한 나라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포기 의사를 밝혔는가가 중요하며, 그에 앞서 시효가 완료되지 않아야 합니다. 영토 매매 계약에서 시효는 1백 년이며, 그 기간이 지나면 정당한 권리자라도 그 권리가 소멸합니다. 간도협약은 1909년 9월 4일에 체결되었으므로 2009년 9월 4일이면 간도 협약은 그 과정에 상관없이 영원히 유효하게 됩니다. 또한 남한과 북한 모두 간도에 대한 공식적인 영토 선언을 한 적이 없으며, 이는 중국 영토임을 묵시적 승인하였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7월 28일 (월) 10:14 (KST)[답변]
Knight2000님의 의견에서 틀린 부분을 몇가지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백두산정계비가 일본에 의해 훼손됐다는 주장은 처음 듣습니다만 설령 훼손됐다 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등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남아있으며, '서위압록 동위토문'의 기본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일본의 훼손 여부는 간도 문제와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2) Knight2000님이 제시한 '보호하는 나라는 보호받는 나라에게 불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은 상당히 비논리적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보호하는 나라인 일본이 보호받는 나라인 우리 나라의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유리한 행위를 했다면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는 보호받는 나라가 유리하고 불리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우리를 보호령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3) 국제법에는 영토 매매 계약의 시효가 1백년이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이는 이 항목의 본문에도 나타나는 부분으로 조차계약의 상한이 일반적으로 99년이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오류로 보입니다. --샤이바니 (토론) 2009년 10월 18일 (일) 23:45 (KST)[답변]
오래된 내용인데...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죄송... (2) 보호국-피보호국 문제는 보호조약이 "유효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유효하지 않다면"이라는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했습니다. '보호하는 나라는 보호받는 나라에게 (외교적으로) 불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의 어디가 비논리적이죠? 을사 보호 조약의 대전제가 그것인데요. 실제로야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체결했지만, "보호 조약"이라는 명분 때문에 일본은 외교적으로 조선에게 불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3) 예, 맞습니다. 제가 당시 무언가를 착각했나 봅니다. 영토 매매 계약의 시효는 없습니다. 계약 체결 즉시 시효는 끝나죠.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불법적인 영토 매매 계약"입니다. 다시 말해 "불법 행위"에 따른 권리 소멸 시효입니다. 강제로 남의 영토를 평온하게 1백 년간 점유하면 원소유주의 권리가 상실된다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빼앗긴 쪽에 가만히 있지는 않고, 시효가 끝난 뒤에 전쟁이 일어난 예도 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5월 1일 (토) 00:15 (KST)[답변]

중립성 틀[편집]

영토 분쟁이라고만 하고 토론을 끝낸 듯 하니 중립성 틀을 지우겠습니다.--D-TC (토론) 2009년 3월 22일 (일) 10:15 (KST)[답변]

도문강이 두만강?[편집]

고등학교때 배우기는, 도문강이 지금 토문강으로 불리우는 곳으로, 간도 협약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간도의 일부는 간도 협약에 의해 당시 조선/한국 땅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아시는 분? Ugha (토론) 2009년 9월 4일 (금) 13:55 (KST)[답변]

이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Puzzlet Chung (토론) 2009년 9월 4일 (금) 20:53 (KST)[답변]

토문강이 두만강을 표기한 겁니다. 흔히 유사사학에서는 그렇게 주장하는 거 자체가 식민사관이라 억지를 부리지요. 자세한 건, 제가 여기 사용이 서툴러서 링크를 걸겠습니다. http://cafe240.daum.net/_c21_/bbs_read?grpid=16B0S&mgrpid=&fldid=6KZI&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4Wr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7413 (토론) 2009년 10월 21일 (금) 15:09

카페글은 전~혀 도움 안됩니다.진실과 환상 (토론) (기여) 2010년 4월 28일 (수) 16:04 (KST)[답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토문강과 두만강이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간도는 조선 땅이었습니다. 왜? 두 강이 같든 다르든 백두산 정계비의 내용보다 우선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착각하면 안 됩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4월 30일 (금) 23:59 (KST)[답변]
간도는 절대 한국령이 아닙니다.이는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223.28.132.128 (토론) 2015년 12월 8일 (화) 01:07 (KST)[답변]

간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땅일까요?[편집]

간도에 대한 역사에서 "간도는 역사적으로 부여와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영토였으나, 발해가 926년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 멸망하면서 상실하였다" 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간도는 처음부터 우리땅인데 빼앗겼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수정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ll of One (토론) 2010년 4월 28일 (수) 16:04 (KST)[답변]

어떤 내용으로 편집하실 예정인가요?진실과 환상 (토론) (기여) 2010년 4월 28일 (수) 16:05 (KST)[답변]
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저는 독도는 명백히 대한민국 영토라 보지만, 간도는 다루기가 민감하다고 보는사람입니다.--sienic (토론) 2010년 4월 28일 (수) 16:18 (KST)[답변]
제시한 문서에는 숙종 때의 일에 대해 전부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숙종 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기 전에는 아예 조선에서 관리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빼고 "불법 침입"한 기록만 나타나 있네요. 숙종 때의 간도 문제는 이원적이라서 청나라에서 아무말 안 할 때에는 관리를 파견하고, 뭐라고 하면 다시 불러들였죠. 이것은 병자호란이 끝나고 맺은 강화에서 "조선의 영역을 보존"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두만강과 압록강이 국경이었다? 누가 정했답니까? 정해지지 않았기에 후대에 문제가 된 것이죠. 역사적 사실로서는 "이미 세종 때 두만강과 압록강이 국경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여진족이 압록강 이남으로 들어와서 상당히 오랫동안(1년 이상) 점거한 경우도 있었고, 마찬가지로 두만강을 넘어와서 오랫동안 점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점은 만주 전역이 명나라 영토이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진족이 명나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니 만주도 명나라 것이다? 여진족은 조선으로부터도 관작을 받았는데요. ㅡㅡ; 명나라는 유조변이라는 목책을 만들고, 그 안쪽만 명나라(북직례성)로 인식했습니다. 그 바깥쪽은 명나라가 아니었죠.
반면에 조선의 경우 압록강과 두만강이 자연 경계로서 역할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인식의 경계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진이 들어왔으니 조선도 나아갈 수 있다고 인식했죠. 앞서 말한 숙종 때의 지방관 파견 등이 그러한 생각을 반영하게 됩니다. 반대로 청나라에서 뭐라 하니 불러들이죠. 앞서 말한 "이원적"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손가락만 빨면서 "저기도 우리 땅인데..."라고 생각만 할 뿐 뭐라고 겉으로는 한마디도 못했죠. 그러면서 "저기는 우리 땅이 아니야"라는 문서만 잔뜩 남겨 놓았죠. (그럼 조선 땅도 아닌데 뭐하러 지방관은 파견했을까요?) 고종 때까지 그 짓거리를 반복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0년 4월 30일 (금) 23:54 (KST)[답변]
한민족’이란 표현이 모호하므로 삭제했습니다.[1] --Puzzlet Chung (토론) 2010년 4월 29일 (목) 23:15 (KST)[답변]

편집 분쟁[편집]

사:일단술먹고합시다님이 명나라로부터 조선이 선춘령을 국경으로 인정받은 출처가 없다, 청나라가 백두산정계비를 취소할 수 없다는 내용이 독자연구라며 사용자:대한민님의 편집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조-명 국경에 대한 내용은 태종실록 9권, 태종 5년 5월 16일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보니 백두산정계비는 착오로 잘못 국경을 정한것이니 중국이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백두산정계비의 효력이 취소된다면 국경 협상 자체가 무효여서 서간도가 한국땅이 된다는 출처는 존재합니다. [2] 또한 비엔나 협약은 조약의 착오를 취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정한 것입니다. 백두산정계비가 국경조약으로서 효력을 갖는다면 비엔나협약 이전에 체결된 조약에서도 체약국이 착오를 감지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거나 스스로의 잘못으로 오류를 만든 경우에도 조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백두산정계비에 의한 국경획정을 취소할 수 있는데. 그런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대한민님의 편집은 독자연구는 아니지만, 중국의 주장을 충실히 담지 못해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측의 의견을 어떻게 조화롭게 담으면 좋을까요?--사하라해방 (토론) 2016년 1월 16일 (토) 16:56 (KST)[답변]

음... 뭔가 오해하신 듯 한데 완전히 되돌리겠다는 게 아니고 대폭적으로 수정하려고 합니다. 간도는 아직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쓰다보니 넘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선춘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국내부터 두만강 이북까지 이설이 있습니다만... 조선이 두만강 이북을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것만큼은 정설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16일 (토) 17:09 (KST)[답변]

문서 내용을 지속적으로 대량 내용 삭제하고 다시 되돌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토문강이 두만강이란 전제로 써있다는 내용이 삭제해도 내용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북한은 중국과 간도에 대해 국경 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간도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경 분쟁이라고 봅니다. --쏜치팍 (토론) 2016년 2월 18일 (목) 07:36 (KST)[답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와 문서의 객관적 서술은 별개입니다. 다른 문서에 관한 의견충돌을 빌미로 제대로 문서를 읽지도 않고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괴롭힘의 의사표현일 뿐, 정상적인 대응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되돌리는 서술의 지지 의사라도 기술하는 게 토론의 자세 아닐까요. --121.140.203.206 (토론) 2016년 2월 18일 (목) 07:58 (KST)[답변]
간도 문제나 창씨 개명에 대해 편집을 지우고 되돌리기를 시작한 건 제가 아닙니다. 문서를 제대로 안 읽었다니 그거 상대에 대해 예의가 아니신 듯 한데요? 제대로 읽고 편집 되돌린 겁니다. 윤치호의 견해가 창씨 개명에 분명 접점이 있었음에도 무조건 지우셨구요. 토문강 두만강에 대한 이설에 대해서도 기록될 필요가 있었구요. 그리고 '~일 수 있다'는 자가 연구식 서술이나 정당한 문서 출처 ref택을 지운다던지 여러 문제점을 보고 되돌린 겁니다. 그리고 해당 문서들을 되돌린 건 보니 저 뿐만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서명이 없으셔서 IP 표시 부분을 눌러 들어가니 또 다른 분이 문서 마음대로 삭제하지 말라 요청을 했는데도 계속 지우고 계십니다. --쏜치팍 (토론) 2016년 2월 18일 (목) 08:08 (KST)[답변]

문서 훼손[편집]

문서 훼손하지 마세요. 백:출처에 따른 편집을 하시기 바랍니다. --함북연길 (토론) 2016년 11월 21일 (월) 17:47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간도에서 2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12일 (월) 18:09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5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간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5월 23일 (목) 10:27 (KST)[답변]

학산 무두리가 추가한 모든 내용이 저작권 침해[편집]

[ http://eastasia.hanyang.ac.kr/front/jurnal/include/file-load?id=645&fileId=293 대한제국기 간도영토론의 등장과 종식] 한양대학교 이명종 논문의 표절로 보입니다. Earwig's Copyvio Detector에서 위 논문의 구글 캐시와 표절률 조사를 하니 91.5% 로 나왔습니다.

이명종이 만주학자인 것을 고려하면 이 사용자 본인이 이명종(한양대학교 박사, 현재는 지방대인 강릉원주대 연구교수)일 가능성은 있겠지만, 논문은 일반적으로 게재된 논문에 대해 저작권을 넘기는게 관례이며 동아시아문화연구 논문 투고 규정에 따르면

제3조(저작권) 본 연구소의 학술지인 『동아시아문화연구』에 게재된 논문 등의 저작권은 본 연구소가 소유한다. 저작권에는 디지털로의 복제권 및 전송권을 포함한다. 다만, 게재된 논문 등의 필자가 본인의 논문 등을 사용할 경우에는 연구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승인한다. 라고 되어 있어서 이명종이는 이 논문 내용을 위키백과에 사용하도록 승인할 권한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역사 문제에 대해 1인의 논문을 복제한 글으로 문서를 덮어 씌우는 것은 백:중립적 시각 등의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특별히 저작권 침해가 아님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학산 무두리가 수정하기 이전 판본으로 되돌려져야 합니다.

ㄴ 기존부터 출처를 밝혔습니다만, 문단마다 달아놓지 않아서 마처 확인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수정하였습니다. 또 중립적 시각 등의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저는 이명종의 논문 전문을 복제하여 게시한게 아니라 해당 논문외에도 다른 서적과 논문들도 같이 인용하여 다듬고 편집하고 있습니다. 상반되는 타당한 견해가 있다면 같이 소개하면 되는 문제입니다.--학산 무두리 (토론) 2019년 5월 31일 (금) 10:38 (KST)[답변]

찬성 저작권은 중요합니다. Mailzzang+aus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21:01 (KST)[답변]

반대 다른 글도 보면 논문이나 서적에서 내용 인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위키피디아가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아닌데, 과연 저 논문을 인용한 것이 문제가 될까요? 물론 논문 저자가 내려달라고 하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닌데 저작권 침해까지야..--미스터위키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21:16 (KST)[답변]

찬성 해당 사용자는 살펴보면 저작권 침해 논문 글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리목적이 아니여도 위키백과:저작권을 보시면 누구나 비영리적 또는 영리적으로도 자유로이 이용가능한 자료에 원칙적으로 한정된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작권이라는 것은 본인이 글을 다듬고 편집한다고 해당 논문 내용이 주로 쓰여 있는 글 저작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서적과 논문들도 인용한다면 그것 또한 다른 서적과 논문 저작권 침해인 것입니다.--프렌치리 (토론) 2019년 6월 1일 (토) 23:45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6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간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6월 9일 (일) 02:44 (KST)[답변]

2019년 6월 8일의 특정판 삭제 신청 이의[편집]

--182.211.169.157 (토론) 2019년 6월 16일 (일) 17:48 (KST) 삭제하지 마세욜[답변]

미완료 근거가 없습니다.--L. Lycaon (토론 / 기여) 2019년 8월 19일 (월) 10:53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8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간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8월 22일 (목) 04:04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20년 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간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20년 1월 13일 (월) 05:09 (KST)[답변]

중국어 한글 표기[편집]

위키백과 중국어 표기 문서를 보면 ian은 옌으로 발음한다 하고 j는 ㅈ로 발음한다 합니다. 그럼 졘다오 아닌가요? 바꾸고 싶은데 혹시 몰라 토론에 올려봅니다. 역사애호가익명 (토론) 2024년 1월 9일 (화) 23:3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