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베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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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체친에서의 안톤 베베른, 1912년 10월

안톤 폰 베베른(Anton von Webern, 1883년 ~ 1945년)은 오스트리아작곡가이다.

생애[편집]

1883년 12월 3일 에서 태어나, 빈 대학교에서 음악학자 귀도 아들러를 사사하고 동 대학원에서 음악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04년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알게 되었고, 알반 베르크와 함께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08년, 작품3과 작품4의 가곡집을 작곡하였고, 초기의 독자적인 무조작풍을 확립하였다. 이 무렵 각지의 가극장에서 연습지휘자 및 악장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부터 쇤베르크가 창설한 사적 연주회의 협력자가 되고, 작곡에 전념하였다. 1939년 나치스 정권수립과 동시에 활동을 정지당하여 교수직도 잃었으며, 사적인 작곡 교수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만년에 접어든 그는 조용한 성격에다가 또한 신비적인 특질이 심화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 9월 15일, 미국 헌병의 총기오발에 의하여 잘츠부르크 근방에서 사망하였다.

음악 활동[편집]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의 작품은 점차로 높이 평가되었고, 쇤베르크 악파의 중심인물로서 20세기 전반의 중요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꼽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짧으나, 어디까지나 치밀하고, 섬세하며, 낭비가 없는 응축된 작곡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1924년경부터 12음기법의 시대로 들어간다. 작품 12로부터 19에 걸쳐서 작풍이 복잡하며 연주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마저 있다. 그 후 작품 21번부터는 투명한 구조를 지니는, 이른바 점묘주의(點描主義)의 시대가 된다. 최만년의 3개의 칸타타 등은 인간성에 뿌리박고 있는 종교성까지도 얻고 있다. 전작품 중 반수 이상이 성악곡이다. 1908년, 맨 처음에 발표된 작품1의 관현악곡 《파사칼리아》는 조성을 지니는 작품이다. 1년 후의 《현악 4중주를 위한 5악장》은 완전히 무조적이며, 명작으로서 유명하다.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