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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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역사는 2만년 전 인류가 쌓은 고급 문명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16세기에 스페인이 진출하면서, 식민지가 되어 혹독한 수탈을 경험했다. 18세기 말 유럽에서 혁명이 계속되면서 멕시코에서도 멕시코 독립 혁명이 일어나 독립을 달성했다. 이후 제정된 연방공화국의 대외 전쟁, 디아즈의 독재 등의 시련을 거쳐 1910년부터 1918년까지 계속된 멕시코 혁명의 동란은 현대 국가를 실현했다. 혁명 후 제도혁명당(PRI)의 장기 집권 하에서 근대화와 경제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20세기 후반까지 PRI는 각종 사회 모순을 축적했고, 2000년 선거에서 PRI는 종말을 맞았다.

선사시대[편집]

멕시코선사시대고고학자들과 금석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알려졌다. 현재 스페인 정복기의 기록이 멕시코 연구의 주를 이루고 있다. 믹스텍아즈텍의 양피지는 비교적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마야문명 지역의 고고학과 금석학에는 많은 진보가 있었다.

멕시코 지역에서는 2만 년 전의 유적이 발견되어 있어,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생각된다. 맘모스 등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기원전 8000년경에 옥수수의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시작된 시대를 고대기(archic period)라고 한다.

식민지 이전[편집]

기원전 2300년에 처음 토기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를 형성기(Formative period) 또는 전고전기(Preclassic period)라고 한다. 메소아메리카 연구의 최근 동향으로 먼저 고전기 세그먼트 이름을 가진 연구자가 전진하고 있다.

전고전기 중기 기원전 1300년 무렵, 걸프를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번성했다. 올멕 사람은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생 로렌소(베라 크루즈), 후 라 벤타(타바스코)라는 제단을 만들었다. 올멕 문명은 그들의 통치자의 면모를 새긴 니그로이드적인 풍모의 거석 인두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한편, 후고전기 후기가 되면, 유카탄 반도 북부에 코무첸, 캄페체, 칼라크물 등 여러 마야 문명의 제단이 세워졌다.

스페인 식민지[편집]

독립 운동[편집]

1810년 돌로레스 교구의 신부였던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가 "돌로레스의 외침(Grito de Dolores)" 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며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달고의 독립운동은 많은 지식인들과 자유주의자, 빈곤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한 때 이들은 100,000명에 달하는 엄청난 군세를 자랑하며 멕시코시티 근처까지 접근하였지만, 이달고와 지휘관층의 군사적 능력 부족으로 결국 군대는 공중분해되고 이달고는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이달고가 사망한 이후 독립 운동은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가 계속해서 이어갔다. 역시 성직자였던 그는 아카풀코, 칠판싱고 등 남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1813년 9월에는 점령한 주의 대표들과 함께 "칠판싱고 회의" 를 개최하여 멕시코의 헌법 제정과 공화정 수립, 노예제도 폐지와 토지 재분배 등의 사항에 합의하기도 했다. 모렐로스의 독립 운동은 독립하기 전까지 가장 진보적이고 민중적인 성향을 띠었지만, 결국 모렐로스가 1815년 체포되어 사형당함으로써 빛을 보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에스파냐 침략으로 본국이 혼란에 빠지자, 대표적인 왕당파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와 그 때까지 남아있던 독립군 중 하나인 비센테 게레로, 과달루페 빅토리아가 손잡고 "이구알라 강령" 을 발표했다. 이 강령의 골자는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의 주권을 마드리드에서 멕시코 시티로 가져오는 것었다. 이구알라 강령은 기득권층의 권리를 뒤집는 조치가 없이 오로지 독립만을 발표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보수 세력인 교회나 지주들도 독립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에스파냐 국왕 페르난도 7세와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 후안 오도노후는 이 강령을 거절했고, 이투르비데는 군대를 동원해 1821년 9월 27일 멕시코시티에 입성하고 다음 날 멕시코의 독립을 선포한다. 부왕 오도노후는 이투르비데와 멕시코가 부르봉 왕가의 사람을 군주로 삼는 입헌군주국이 된다면 독립을 인정하겠다는 "코르도바 협상" 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의견은 페르난도 7세와 에스파냐 의회에 의해 기각되었고, 결국 1822년 9월 이투르비데는 스스로 "아구스틴 1세" 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1821년 12월 가비노 가인사를 중심으로 한 중앙 아메리카 연합(과테말라, 니카라과, 벨리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이 멕시코에 가입한다.

독재 정권기[편집]

멕시코 혁명기[편집]

현대[편집]

주석[편집]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