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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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왕조(Magonid dynasty)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40년까지의 카르타고 제국의 왕조였다. 기원전 340년, 왕조는 마고 1세에의해 처음 창건되었는데, 그의 아래에서 카르타고는 서부 지중해의 페니키아 식민지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1] 마고 왕조 아래에서 카르타고 제국은 팽창하여 리비아사르디니아를 병합하였고 근 10년동안 시칠리아를 병합하였다.[2]

마고와 그의 초기 계승자는 왕으로서라기보다는 독재관 또는 정치적인 대인으로 다스렸다.[3]

기원전 480년 ,하밀카르 1세의 사후에 왕은 그의 권력 대부분을 귀족 자문 원로에게 잃었다. 기원전 308년 한노 왕조의 보밀카르는 쿠데타를 일으켜 군주의 전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여 카르타고는 공화국이 되었다. [4][5]

지도자 목록[편집]

연표[편집]

550 BCE: 마고 1세 집권.

540 BCE: 카르타고-에트루리아 동맹이 알랄리아 전투후 코르시카에서 그리스인들을 추방하였다.

530 BCE: 마고가 죽고 하스드루발 1세 집권

Mid 520s BCE: 하스드루발이 그의 형제 하밀카르 1세와 사르디니아로 출정.

510 BCE: 하밀카르 1세 집권

509 BC: 카르타고와 고대 로마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어 영향력과 상업 활동의 분할을 보였다. 이것은 카르타고시칠리아사르디니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엠포리아와 케이프본에 대한 조정권를 얻었음을 나타낸다.

483 BCE: 카르타고가 그리스인에 대항하여 처음으로 시칠리아에 출정

480 BCE: 카르타고는 히메라 전투에서 큰 손실을 겪었다. 하밀카르는 피살되고 1차 시칠리아 전쟁은 종전하였다. 한노 2세 또는 항해자 한노가 집권하였다. 104인으로 구성된 장로회가 등장하고 카르타고의 왕권은 약화되었다.

440 BCE: 한노의 치세 종료. 그의 치하에서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이 카르타고에 병합되었으며 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이 탐험되고 정착되었다. 히밀코 1세 집권.

410 BCE: 한니발 1세 집권. 같은 해에 시칠리아 공격.

409 BCE: 시라쿠사의 강력한 그리스 동맹 도시 셀리누스의 파괴로 정전.

406 BCE: 한니발 병사후 히밀코 2세 집권.

396 BCE: 히밀코는 디오니시우스 1세에게 크게 패하고 자살. 마고 2세 집권.

392 BCE: 마고는 리비아 반란을 깨트리고 시칠리아의 디오니시우스와 휴전.

378 BCE: 마고가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니온 전투에서 시라쿠사 군에 패하여 시리쿠사와 카르타고는 화친하였다.

375 BCE: 마고 2세가 죽고 마고 3세가 집권.

348 BCE: 이탈리아의 중요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로마와의 2차 협상.

344 BCE: 마고 3세가 죽고 한노 3세 집권.

340 BCE: 한노 3세가 원로들의 자문회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시도하여 군주의 권력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참고문[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