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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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청(2010년)

리자청 경(李嘉誠, Sir Ka-shing Li, GBM, KBE, 1928년 6월 13일~)은 중국 광둥 성에서 태어난 기업인으로, 중국 최대의 기업 집단 장강실업 그룹의 창시자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중국인 중 세계 최대의 부자 중 한 사람이다.

유아시절[편집]

그의 가족들은 대대로 고귀한 선비 집안을 지낸 인물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리자청의 아버지는 항상 남에게 빌붙어 얻어 살지 않고,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 쓰는 스타일이었다. 리자청도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절대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리자청의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리자청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결국 리자청이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리자청의 아버지는 항상 검소하고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리자청에게 남길 유산이 단 한 푼도 없었다.

성인시절[편집]

결국 리자청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청렴하고 검소한 정신을 버려야 했다. 왜냐하면 먹고 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라, 때마침 중국은 서양 열강들의 침입을 받아서 크게 혼란해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난징 특별시의 경우는 중화민국의 창시자 쑨원이 집권하고 있었고 난징 일대의 장쑤 성저장 성 쪽은 열강들의 침입이 거의 없었으며, 경제도 중국에서 매우 발전해있는 상태였다. 반대로 베이징 특별시의 경우는 외국인들이 이미 주요 기관들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제국이 멸망에 임박해있었고, 중앙 정권이 붕괴 직전에까지 이르러서 많이 혼란해져 있었다.

리자청은 난징에 도착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 고분분투를 한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청렴하고 검소한 정신을 버려서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리자청은 아버지의 정신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었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되, 절대로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며 항상 남들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방법도 모색해내었다.

이후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리자청은 자신의 재산들을 버리다시피해서 홍콩으로 이주한다. 홍콩에서 또다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서 자신이 구상해낸 장강실업의 모태를 완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업적[편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한 곳인 장강실업의 창립에 이어서, 리자청은 중국에도 대도시에 수많은 대학교들을 세웠다. 베이징, 난징, 뤄양, 청두, 톈진, 광저우, 시안, 충칭, 홍콩 등 수많은 대학교들을 세워서 중국인들의 교육 활성화에 앞장섰다. 그리고 베이징에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광장인 동방광장(東方廣場)을 만들었다.

평가[편집]

리자청은 동양에서 최대의 부자로 거듭날 정도로 세계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다. 특히 서양에서는 삼성의 창시자인 이병철현대의 창시자인 정주영보다도 리자청이 훨씬 더 유명하다. 리자청이 왜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었냐면, 바로 자신의 청렴한 삶 때문인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리자청은 항상 낮은 자세로 부하 직원들을 한 사람씩 보살폈으며, 특히 단체로 식사를 할 때도 주요 측근들만 이끌고 최고급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믿을만하며 계급에 상관 없이 일을 잘 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

서훈[편집]

주석[편집]

  1. 2000년 6월 19일자 런던 관보(London Gazette Issue 55879: 2000 Birthday Honours - United Kingdom)
  2. 리자청은 홍콩캐나다의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캐나다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경의 호칭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