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콘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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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콘 7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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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국왕 | |
| 재위 | 1905년 11월 18일~1957년 9월 21일 |
| 대관식 | 1906년 1월 22일 |
| 전임자 | 오스카르 2세 |
| 후임자 | 울라프 5세 |
| 배우자 | 웨일스의 메우드 |
| 왕가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 |
| 부친 |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8세 |
| 모친 |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루이세 |
| 출생 | 1872년 8월 3일 |
| 사망 | 1957년 9월 21일 (85세) |
| 종교 | 루터란 |
호콘 7세(노르웨이어: Haakon VII, Chrisitan Frederik Carl Gerog Valdemar Axel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 카를 게오르그 발데마르 악셀[*], 1872년 8월 3일 ~ 1957년 9월 21일)는 노르웨이의 국왕(1905~1957)이며, 1905년 국가 독립의 회복 후의 초대 국왕이기도 하다.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의 샬로텐룬드에서 후에 프레데리크 8세가 되는 프레데리크 왕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덴마크의 카를 왕자로 불렸다. 그는 해군 경력을 위해 훈련을 받았으며, 1896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딸이었던 웨일스의 메우드와 결혼하였다.
1905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이 해산되자 왕좌에 올랐으며, 다만 자신이 노르웨이의 국민 투표로 인정이 되면 왕좌를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하였다. 그해 11월 12일 압도적으로 인정되자, 11월 18일 국회에 의하여 국왕으로 뽑혔다. 그는 호콘이란 구노르웨이어 이름을 얻었다.
호쿤 7세는 두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에 노르웨이를 다스린걸로 유명하다.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1940년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침략하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독일의 압력에 놓여있던 국회가 노르웨이 국민들이 독일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데 그에게 퇴위를 명령하였으나, 그는 거부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1945년에 귀국, 사망할 때까지 왕좌에 남아있었다. 1957년 9월 21일 오슬로에서 사망하였다.
| 전 임 오스카르 2세 |
노르웨이 국왕 1905년 11월 18일~1957년 9월 21일 |
후 임 울라프 5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