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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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힐(康瑄詰)은 후고구려(高句麗) 태봉(泰封)의 장군이며 조선공(造船工)이다. 914년 궁예(弓裔)의 명령을 받은 왕건(王建)이 나주로 출정할 때 보장(步將)으로서 왕건(王建)을 도와 선박을 제조하여 군사와 양식을 싣고 나주로 갔다.

생애[편집]

신천 강씨(信川 康氏)의 족보에는 외자인 강선(康瑄)으로 기록되었다. 신천(信川) 출신이다. 사후 참지정사추증된 강세(康世)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궁예의 왕비 신천 강씨, 강연창, 강태주, 강조의 친족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외가 일족이었다.

후고구려에서 장군으로 활동했고 궁예 말에 보군부장(步軍副將)으로 재직하였다. 915년(궁예 15) 6월 후고구려의 왕 궁예의 명으로 왕건을 도와 선박을 건조하였다. 동국통감(東國通鑑) 11권 신라기(新羅紀)에 의하면, 참포(槧浦, 흥해군)의 바닷물과 동해의 바닷물이 서로 부딪쳐서 해일이 발생하여, 해수면 높이가 20장(丈)이 되었으며 3일 뒤에 잠잠해졌다. 궁예는 보장(步將) 강선힐(康瑄詰), 흑상(黑湘), 김재원(金材瑗) 등에게 지시하여 왕건을 도와 배 백여 척을 더 만들게 하였다. 큰 배 십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로 위에는 누로(樓櫓)를 만들었는데, 말을 달릴 수 있었다. 그는 왕건을 따라 군사 3천여 인과 군량을 싣고 나주로 가서 도적을 토벌하였다.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 건국 후 그는 부장을 역임하였다. 최종 관직은 광정대부 삼사우사에 이르렀다. 묘소는 덕달동에 있다 한다.

가족 관계[편집]

  • 7대조 : 호경(虎景)
  • 6대조 : 강충(康忠)
  • 고조부 : 강보육(康寶育)
  • 증조부 : 강적(康迪)
  • 조부 : 강인(康仁)
  • 조모 : 연안 이씨
  • 아버지 : 강세(康世)
  • 어머니 : 고려 좌찬성 수안군(遂安君) 공량공(恭良公) 이수산(李壽山)의 딸 수안 이씨
  • 부인 :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배천 조씨

기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