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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eleager Skopas BM GR1906.1-17.1.jpg|thumb|upight|[[스코파스의 멜레아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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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한, 고전 후기의 거장 스코파스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추구하는, 그 시대가 가진 불안한 동요(動謠)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소로스왕의 묘묘(墓廟)>의 장식 부조(대영 박물관)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부조 기둥 등은 어느 것이나 그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독립된 작품으로는 <포스트>와 난무하는 <마에나드> 등이 로마시대의 모각으로서 몇 점 남아 있다. <크니도스의 데메테르>(대영 박물관)도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이다. 이들 상(像)의 오목하게 깊이 파인 눈이 발산하는 격렬한 표정은 인간의 내면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프락시텔레스의 외형 묘사(外形描寫)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프락시텔레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한, 고전 후기의 거장 스코파스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추구하는, 그 시대가 가진 불안한 동요(動謠)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소로스왕의 묘묘(墓廟)>의 장식 부조(대영 박물관)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부조 기둥 등은 어느 것이나 그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독립된 작품으로는 <포스트>와 난무하는 <마에나드> 등이 로마시대의 모각으로서 몇 점 남아 있다. <크니도스의 데메테르>(대영 박물관)도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이다. 이들 상(像)의 오목하게 깊이 파인 눈이 발산하는 격렬한 표정은 인간의 내면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프락시텔레스의 외형 묘사(外形描寫)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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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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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7일 (목) 16:28 판

스코파스(Scopas, Skopas, 기원전 395년-기원전 350년)는 파로스 섬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조각자이자 건축가였다.

개요

스코파스의 멜레아그로스.

프락시텔레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한, 고전 후기의 거장 스코파스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추구하는, 그 시대가 가진 불안한 동요(動謠)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소로스왕의 묘묘(墓廟)>의 장식 부조(대영 박물관)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부조 기둥 등은 어느 것이나 그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독립된 작품으로는 <포스트>와 난무하는 <마에나드> 등이 로마시대의 모각으로서 몇 점 남아 있다. <크니도스의 데메테르>(대영 박물관)도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이다. 이들 상(像)의 오목하게 깊이 파인 눈이 발산하는 격렬한 표정은 인간의 내면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프락시텔레스의 외형 묘사(外形描寫)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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