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촉성중앙협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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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촉성중앙협의회'''(獨立促成中央協議會)는 [[1945년]] [[10월 23일]] [[한국민주당]], [[국민당]], [[조선공산당]], [[건국동맹]] 등 각 정당 단체 200여 명이 모여 조직한 단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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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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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은 군정의 자문행정기구를 수립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각 정치 세력의 통합을 원했다. [[이승만]]이 공산당에 대해 호감을 표명한 거나 자신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어느 정당에 대해서도 뚜렷한 언질을 주지 않은 채 각 정당의 통일을 강조한 것도 바로 미군정의 그런 뜻을 자신의 세력기반을 구축하는 용도로 이용하고자 했겠지만, 양측의 뜻이 맞아 구성된 것이 바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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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구성 단체들의 면면에서 드러나듯 좌파와 우파를 막론한 초당파적 모임이었다. 회장엔 [[이승만]]이 추대되었다. 이승만은 회장에 선출된 직후, "우리의 염원은 하나뿐이니 힘도 하나, 소리도 하나로 뭉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평화공존은 오래가지 못했다. "임시정부를 추대하느냐, 인민공화국을 국외의 인사로 보강하느냐, 양자택일을 하자"(공산당의 [[이현상]]), "임시정부를 국가의 최고기관으로 해야 한다"([[한국국민당]]의 [[원세훈]]), "임시정부와 인민공화국은 대립된 것이 아니다. 국내외 혁명가들이 결합하자"([[건국동맹]]의 [[이걸소]]) 등의 주장 가운데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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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임시정부와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의 동조 노력에 대해선 [[한국민주당]]과 [[국민당]] 및 [[이영]]의 [[장안파]] 공산당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아 [[1945년]] [[10월 25일]]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박헌영]]의 공산당은 끝내 [[인민공화국]]에 대한 지지를 들고 나와 임시정부냐 인민공화국이냐 하는 양대 진영간의 대립은 다시 격화되었다.<!--강준만 저,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107~108쪽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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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45년 설립]] |
[[분류:1945년 설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