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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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9일 (일) 06:48 판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라틴어: Renatus Cartesius,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 프랑스의 대표적 근세철학자. 방법적론적 회의를 거쳐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원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틴어: Cogito ergo sum / 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의 명제를 선언하여 근대 이성주의 철학의 정초를 닦았다. 수학자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방정식미지수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생애

데카르트는 1596년 투랜 지방(Touraine)의 투르 인근에 있는 소도시 라에 (La Haye, 현재 그의 이름을 빌어 Descartes)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Renne) 시의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14달이 못되어 세상을 떴다. 이후 그는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 건강이 무척 허약했다고 전해진다. 1606년 그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즈 (Collège la Flèche)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8년간에 걸쳐 철저하게 중세식 그리고 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5년간 라틴어, 수사학, 고전 작가, 3년간 변증론에서 비롯하여 자연철학, 형이상학 그리고 윤리학을 포괄하는 철학 수업을 받았다. 그가 이 시기에 받은 교육은 후에 그의 저서 여기 저기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특히 《방법서설》)

라 플레쉬를 졸업한 후 푸아티에(Poitiers) 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1616년에 리상스(Licence)를 취득한다. 1619년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첫 작품 짧은 《음악 개론》(Compendium Musicae)을 썼다. 같은 해에 독일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여행하던 중 11월 10일 울름의 한 여관에서 자신의 삶의 길을 밝혀 주는 꿈을 꾸게 된다. 테카르트는 여기서 삶의 목표를 학문에 두기로 결심을 한 후,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다시 파리로 돌아가 1626년에서 1628년까지 광학, 대수학 그리고 인간의 감성에 관해 연구했다.

1628년 겨울에 데카르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 밑에 있는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가 지배적인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 하아렘 (네덜란드), 에그몬드 (네덜란드) 등의 도시로 여러 차례 주거지를 옮기면서 더러는 개인 교사로 혹은 은둔 학자로 생활을 했다. 이 시기 (1630년 - 1633년)에 자연과학에 관한 책 '《세계》를 집필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책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바탕으로 세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진술했다.

1637년부터 테카르트는 존재론인식론 문제에 몰두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해에 《방법서설》을 출판했다. 존재론과 인식론에 관한 연구 결과는 1641년제1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후에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

철학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진리가 아닌 것들을 소거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저서 《방법서설》에 잘 나타나 있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감각도 배제 했는데, 이는 감각도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도달한 결론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다.

이 결론에 도달한 것은 《방법서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전능한 악마가 인간을 속이려 한다고 해도, 악마가 속이려면 생각하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명제는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명제이며,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은 이 명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데카르트가 사용한 관념이라는 개념은 칸트와 같은 철학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여기서 이 명제를 잘못 이해하면 삼단논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삼단논법이 아니다.

1.모든 존재하는 것은 생각한다.
2.나는 생각한다.
3.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여기서 대전제 1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것보다 일차적이지 못하다. 즉,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본유관념인위관념, 외래관념을 분리하였다. 여기서 외래관념은 밖에서 오는 관념을 말하고 인위관념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본유관념은 태어나면서 부터 존재하는 관념을 말한다. 본유관념은 '삼각형의 꼭지점은 세개이다.', '정육면체의 면은 여섯개 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두 평행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확실하게 참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덧붙여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도 확실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존재론적 증명을 통하여 신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증명은 나중에 칸트의 비판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주체와 대상을 일치시키려 실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바로 연장사유이다. 연장은 구체적인 부피와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를 말하고, 사유는 연장과 달리 부피와 같은 것이 없는 실체를 말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연장과 사유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사유는 몸을 제어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몸과 사유를 이어주는 부분을 송과선으로 보았는데, 데카르트 이후 철학자들은 이 송과선을 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읽어 보기

저서

참고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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