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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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그와 함께했던 파이잘 왕자는 그 후 [[이라크]]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전후, 그와 함께했던 파이잘 왕자는 그 후 [[이라크]]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1935년]]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화된 작품으로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그는 [[1935년]] [[5월 12일]]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전보를 치러 가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화된 작품으로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저서로는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과 [[사막에서의 폭동]](Revolt in the Desert)이 있다.
저서로는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과 [[사막에서의 폭동]](Revolt in the Desert)이 있다.

2009년 11월 24일 (화) 20:14 판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Thomas Edward Lawrence CB, 1888년 8월 16일~1935년 5월 19일)는 영국의 모험가·고고학자·군인이다. 아랍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양어학을 전공하고, 대영 박물관의 탐험대에 참가하여 아라비아와 시리아를 조사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정보 장교로서 카이로에서 활약하고, 이때부터 아라비아 독립을 위해 터키에 대항하였다. 그는 아라비아인에게 헌신적으로 활약하여 ‘아라비아의 로런스’라고 불린다. 그의 저서인 〈지혜의 7주〉와 〈사막의 반란〉은 아라비아 대전을 기록한 책이다.

역사

그의 아버지가 아내에게 불륜을 저질러 놓은 상태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아일랜드 귀족이라는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의 한 평생 동안 충격이 되었다 한다. 그 영향으로 성격은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단련에 미쳐 있었다.

그는 아랍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 도중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 육군으로 참전했고, 아랍군을 지휘했다. 그는 당시 아랍 복장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그것을 수상하게 여긴 터키군이 그를 포로로 잡아서 고문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연합군에 속해 있었고, 터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과 함께 동맹국에 속해 있었다)

전후, 그와 함께했던 파이잘 왕자는 그 후 이라크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1935년 5월 12일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전보를 치러 가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화된 작품으로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저서로는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과 사막에서의 폭동(Revolt in the Desert)이 있다.

바깥 고리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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