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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랑'''(毛郞, 풍월주 548년 - 555년) 은 신라 [[법흥왕]] 후궁이며 백제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 부여씨의 아들이였다. 그의 누이가 [[원화]](源花)였던 [[남모|남모공주]](南毛)였다.
'''모랑'''(毛郞, 풍월주 548년 - 555년) 은 신라 [[법흥왕]]과 그 후궁인 백제 [[동성왕]]의 [[보과공주]](宝果公主) 부여씨의 아들이였다. 그의 누이가 [[원화]](源花)였던 [[남모|남모공주]](南毛)였다.
그는 신라의 제 3대 [[풍월주]]가 되었다. 초대 풍월주 [[위화랑|위화랑공]]이 그의 딸 준화(俊華)를 처로 삼게 하였는데 [[이화랑]]의 누나였다. 그는 딸 준모 하나만을 낳고 일찍 죽었다.
그는 [[지소태후]]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신라의 제 3대 [[풍월주]]가 되었다. 초대 풍월주 [[위화랑|위화랑공]]이 그의 딸 준화(俊華)를 처로 삼게 하였는데 [[이화랑]]의 누나였다. 그는 딸 준모 하나만을 낳고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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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신라 사람]]
[[분류:신라 사람]]
[[분류:신라의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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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신라의 왕족]]
[[분류:풍월주]]
[[분류:풍월주]]

2009년 11월 10일 (화) 21:51 판

모랑(毛郞, 풍월주 548년 - 555년) 은 신라 법흥왕과 그 후궁인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宝果公主) 부여씨의 아들이였다. 그의 누이가 원화(源花)였던 남모공주(南毛)였다. 그는 지소태후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신라의 제 3대 풍월주가 되었다. 초대 풍월주 위화랑공이 그의 딸 준화(俊華)를 처로 삼게 하였는데 이화랑의 누나였다. 그는 딸 준모 하나만을 낳고 일찍 죽었다.


전임
미진부
제2대 풍월주
548년 - 555년
후임
이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