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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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부(未珍夫, 525년 ~ ?, 풍월주 ? ~ 548년)는 신라의 장군으로, 진흥왕거칠부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10개 군을 점령하였다.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그는 제2대 풍월주라고 한다.

생애[편집]

미진부는 신라의 장군으로 551년(진흥왕 12년)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거칠부 등 7명의 장군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백제와의 연합작전이었던 이 전쟁에서 백제가 한강 유역을 먼저 점령하자, 기세를 몰아 신라군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죽령에서 고현까지 10개 군을 점령하였다. 이때 점령된 10개 군은 보통 강원도 및 함경도 남부 일대로 비정된다. 이후의 생애는 전하지 않는다.

한편 학계에서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따르면 그는 신라의 왕족으로 아시공삼엽공주(법흥왕벽화부인의 딸)의 아들이라고 한다.[1] 법흥왕에게 총애를 받아 비대공(법흥왕과 옥진궁주의 아들)과 함께 왕궁에서 자랐으며 진흥왕의 즉위를 지지하여 지소태후의 총애를 받았고 진흥왕이 즉위하자 16세의 나이로 지소태후의 총신이 되었다.[1] 법흥왕보과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원화였던 남모와는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1] 남모가 죽고 화랑이 창설되면서 위화랑이 풍월주가 되고 미진부는 부제가 되었다. 그리고 곧 위화랑이 풍월주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제2대 풍월주가 되었다. 이후 태후의 총애가 줄어들자 548년, 미진부는 풍월주에서 물러나 신라의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부인과 사통하였는데, 후에 태후의 허락으로 묘도와 결혼하여 딸 미실과 아들 미생을 낳았다. 진흥왕 말년에 미실이 왕의 총애를 받자 미진부의 벼슬이 올라 각간에 이르렀다고 한다.[2]

가족 관계[편집]

선대[편집]

부인과 후손[편집]

참조[편집]

각주[편집]

  1. 《화랑세기》, 지만지, 2008, 24면
  2. 같은 책, 25면
전임
위화랑
제2대 풍월주
후임
모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