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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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성'''(律成,[[1918년]] [[8월 13일]] - [[1976년]] [[12월 7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곡가이며 본명은 정부은(富恩)이었다. 1918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정률성'''(律成,[[1918년]] [[8월 13일]] - [[1976년]] [[12월 7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곡가이며 본명은 정부은(富恩)이었다. 1918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중국]] [[난징]]에 도착하고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다.
[[1933년]]에 [[중국]] [[난징]]에 도착하고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다.

2009년 9월 10일 (목) 18:04 판

정률성(郑律成,1918년 8월 13일 - 1976년 12월 7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곡가이며 본명은 정부은(郑富恩)이었다. 1918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33년중국 난징에 도착하고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다.

1936년에 그는 처녀작 《오월의 노래》(五月之歌)를 작곡했다.

1939년중국 공산당에 들어 갔다.

1945년 북조선으로 돌아가서,조선인민군구락부부장, 조선인민군 협주단 단장, 조선음악대학 작곡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해방 행진곡》、《두만강》、《동해어부》등을 작곡했다. 그는 후에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1976년 12월 7일베이징에서 사망하고 팔보산 혁명 공동묘지(八宝山革命共同墓地)에 안장되었다.

작품

  • 옌안송
  • 팔로군행진곡
  • 연수요
  • 싱안링에 눈이 내리네
  • 십륙자령 3곡
  • 망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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