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효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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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제나라 사람]]
[[분류:기원전 7세기 죽음]]

[[zh:齊孝公]]

2009년 9월 8일 (화) 16:18 판

효공(孝公, ?~기원전 633년, 재위 기원전 642년-기원전 633년)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임금으로, 성은 강(姜)이며 휘는 소(昭)다. 제 환공과 갈영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관중 (인물)이 살아 있을 때, 제 환공과 관중이 세자로 세우고, 송 양공에게 후원을 촉탁했다. 관중 사후 제 환공이 자신의 후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서장자 무궤가 총신 옹무, 수초와 결탁하여 제 환공 사후 군신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므로 송나라로 도주하여 송 양공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송 양공은 조(曹), 위(衛), 주(邾)와 연합하여 원조를 승낙하고 제나라로 쳐들어갔다. 이에 제나라 사람이 무궤를 죽이고 소를 군위에 모시려 했으나, 소는 나머지 네 공자의 공격을 받아 송나라로 도망쳐 돌아왔다. 송 양공은 다시 원병을 내어, 나머지 공자들의 군사를 언(甗, 현재의 산둥 성 지난 부근)에서 무찔렀다. 소는 제나라 서울 임치로 들어가 제나라 군위에 올랐다. 이 후계 쟁탈전으로 인해 제나라의 힘은 쇠퇴하여, 패권국의 지위를 잃었다.

송나라가 녹상에서 회맹을 개최하자 초나라와 함께 참여했으며, 송 양공이 죽은 해 봄에 송나라를 쳐 민 땅을 포위했다(송 양공은 그 해 여름에 죽었다).

노 희공 26년(기원전 634년) 봄, 노나라 서비를 쳤으며, 여름에 노나라에 흉년이 든 것을 기화로 노나라 북비를 쳤다. 노나라 대부 전희가 제나라 국경까지 나아가 제나라 군사를 공궤하여, 효공과 담판을 지었다. 효공은 제나라로 돌아갔다. 이 해 겨울, 초나라로 망명한 공자 옹과 그를 섬기는 역아를 앞세운 초· 노나라의 공격을 받아 양곡 땅을 빼앗겼다.

전임
제후 무궤
후작
기원전 642년-기원전 633년
후임
아우 제 소공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