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3번째 줄:
'''안병직'''(安秉直, [[1936년]]~)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경상남도|경남]] [[함안군]] 태생으로 [[부산공업고등학교|부산공고]]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안병직'''(安秉直, [[1936년]]~)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경상남도|경남]] [[함안군]] 태생으로 [[부산공업고등학교|부산공고]]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960년에 터진 [[4.19 혁명]] 이 후 [[마르크스경제학]]에 심취해 [[마오쩌둥]]의 이론을 응용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면서 한국경제를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설파했다. 하지만 1989년 [[몰타선언]]이 후 공산권이 붕괴하자,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한국 경제의 실태를 무시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종속성을 띄면서도 독자적 발전과정을 걷고 있다는 [[중진 자본주의론]]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1960년에 터진 [[4.19 혁명]] 이 후 [[마르크스경제학]]에 심취해 [[마오쩌둥]]의 이론을 응용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면서 한국경제를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설파했다. 하지만 1989년의 [[몰타선언]] 이 후 공산권이 붕괴하자,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한국 경제의 실태를 무시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종속성을 띄면서도 독자적 발전과정을 걷고 있다는 [[중진 자본주의론]]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 이후 일본 [[도요타재단]]의 학술지원을 받아 "[[일제시대]]는 한국 근대화의 기틀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의 제자인 [[이영훈 (경제학자)|이영훈]], [[박세일]] 등과 함께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며 대안교과서 및 식민지 근대화론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
그 이후 일본 [[도요타재단]]의 학술지원을 받아 "[[일제시대]]는 한국 근대화의 기틀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의 제자인 [[이영훈 (경제학자)|이영훈]], [[박세일]] 등과 함께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며 대안교과서 및 식민지 근대화론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

2008년 5월 19일 (월) 11:29 판

안병직(安秉直, 1936년~)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경남 함안군 태생으로 부산공고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960년에 터진 4.19 혁명 이 후 마르크스경제학에 심취해 마오쩌둥의 이론을 응용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면서 한국경제를 미국일본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설파했다. 하지만 1989년의 몰타선언 이 후 공산권이 붕괴하자,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한국 경제의 실태를 무시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종속성을 띄면서도 독자적 발전과정을 걷고 있다는 중진 자본주의론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 이후 일본 도요타재단의 학술지원을 받아 "일제시대는 한국 근대화의 기틀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의 제자인 이영훈, 박세일 등과 함께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며 대안교과서 및 식민지 근대화론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