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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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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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제31대 왕 | |
재위 | 기원전 432년 - 기원전 408년 |
이름 | |
휘 | 중(中)[1] |
시호 | 간대왕(簡大王)[2], 간대왕(柬大王)[3]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기원전 408년 |
왕조 | 초(楚) |
가문 | 미성 웅씨(羋姓 熊氏) |
초 간왕(楚 簡王, ? ~ 기원전 408년)은 중국 초나라의 제31대 군주(재위: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08년)이다.
생애
[편집]혜왕(恵王)의 아들로 기원전 432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원전 431년 북쪽을 쳐서 제(齊)와 노(魯) 사이에 있던 소국 거(莒)를 멸망시켰다.[2] 이는 혜왕에 이어 초의 국세가 다시 이전과 같이 막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4]
기원전 425년에 송 도공(宋悼公)이 초에 내조하였고, 송의 사성(司城)[立皮]之가 공실(公室)을 약체화시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간왕은 간오양(莫敖陽)에게 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송의 공실을 평정하고 황지(黄池)나 옹구(雍丘)에 성을 쌓도록 명했다. 그러나 진(晋)의 위사(魏斯) ・ 조완(趙浣) ・ 한계장(韓啓章)이 군을 거느리고 황지를 포위하였으므로 간오양의 병사들을 초로 귀국시켰다.
기원전 423년 간왕은 간오양에게 군을 거느리고 진을 공격하도록 했다. 초군은 의양(宜陽)을 빼앗고 적안(赤岸)을 포위해 황지 전투에서의 복수를 실현시켰다. 진의 위사 ・ 조완 ・ 한계장이 군을 거느리고 적안을 구원하였기에 초의 군은 포위를 풀고 철퇴하여야 했다. 진군과 장성(長城)에서 전투를 벌여 초의 군은 패했고, 많은 물자를 내버려둔 채 도주해야 했다.[5]
기원전 413년 초의 군은 진을 쳐서 낙읍으로의 상경을 이루었다.[6] 기원전 408년 간왕은 사망하고, 그 아들이 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2]
각주
[편집]전 임 아버지 혜왕 웅장 |
제31대 초나라의 군주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08년 |
후 임 아들 성왕 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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