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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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의(全循義, ? ~ ?)는 조선 전기의 의관이다. 《의방유취》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식료찬요》 등의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천안 또는 진안.
생애
[편집]전순의는 전의감(典醫監)의 의관으로, 1445년(세종 27) 365권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의학 백과사전 《의방유취》의 편찬에 참여하였다.[1] 2년 뒤인 1447년에는 김의손(金義孫)과 함께 《침구택일편집》(鍼灸擇日編集)을 썼고, 1459년경 요리책이자 농업책인 《산가요록》(山家要錄)을 쓰기도 했다. 1440년에는 금성대군의 병을 낫게 하여 옷을 받았고,[2] 세종의 죽음으로 잠시 전의감 서원으로 강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었다.[3] 2년 뒤인 1452년에는 세종의 아들 밀성군의 병을 거쳐 포상으로 안마(鞍馬)를 받았다.[4] 같은 해 5월 문종의 병을 고치지 못하여 의금부에 하옥된 뒤 전의감의 청지기로 좌천되었으나[5] 이듬해 방면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였고 이듬해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의 벼슬을 제수받았다. 세조는 그를 총애하여 1462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벼슬을 높여주고 그가 쓴 책에 손수 《식료찬요》라는 제목을 지어주기도 했다.[6] 1464년 병이 난 세조에게 시약을 올린 공로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되고 1467년 내의로 상호군에 이어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저서
[편집]- 《식료찬요》(食寮纂要)
- 《산가요록》(山家要錄)
- 《침구택일편집》(鍼灸擇日編集) - 김의손과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