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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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창(李國昌, 9세기 ~ 887년)은 돌궐 사타(沙陀) 사람으로 본명은 주야적심(朱邪赤心) 또는 적리(赤衷)[1]이며 이국창은 당 왕조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다.
당 왕조의 장령(將領)으로 주야철륵(朱邪鐵勒)의 후손이자 주야집의(朱邪執宜)의 아들이다. 그의 아들은 진왕(晉王)에 봉해진 이극용(李克用)이다.
생애
[편집]당 의종 함통(咸通) 10년(869년) 방훈(龐勛)의 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이국창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규절(旌節)을 하사받고 서주관찰사(徐州觀察使)에 봉해졌으며 장안 친인리(親仁里)에 관저 한 채를 하사받았다.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877년) 10월에 소의절도사(昭義節度使) 이균(李鈞), 노룡절도사(盧龍節度使) 이가거(李可舉), 토욕혼도독(吐谷渾都督) 혁련택(赫連鐸), 백의성(白義誠) 등이 울주(蔚州)에서 이국창을 공격하였다. 이가거는 이극용을 약올령(藥儿岭)에서 부수고 혁련택도 이국창을 쳐서 패배시켰다. 때문에 국창 부자는 북쪽으로 달단(鞑靼) 땅으로 달아났다.
훗날 이극용이 황소(黄巢)의 난을 진압하는데 세운 공으로 이국창도 대북절도사(代北节度使)에 봉해졌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손자 존욱(存勗)이 후당을 세운 뒤에 이국창은 헌조 문경황제(献祖文景皇帝)에 봉해졌으며 능호를 장녕릉(长宁陵)이라 하였다.
가족관계
[편집]-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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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황후(文景皇后) 진씨(秦氏)
-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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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성(李德成) - 본명은 주야덕성(朱邪德成)이다.
-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