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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렉산드르 할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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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렉산드르 할리치
Галич, Олександр Аркадійович
작가 정보
본명올렉산드르 아로노비치 긴즈버그
출생명올렉산드르 사샤
로마자 표기Alexander Arkadievich Galich
출생1918년 10월 19일(1918-10-19)
러시아 제국 예카테리노슬라프
사망1977년 12월 15일(1977-12-15)(59세)
프랑스 파리
국적소련
성별남성
언어러시아어
직업시인, 극작가, 음유시인
학력막심 고리키 문학 대학
장르바르드
부모페이가 보리소브나 웩슬러
아론 긴즈버그
영향 준 인물율리 김

올렉산드르 할리치(우크라이나어: Галич, Олександр Аркадійович)는 우크라이나음유시인이자 극작가이다.

할리치는 반체제인사 탄압과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그는 노동자. 죄수, 병사, 운전사, 알코올 중독자를 노래의 소재로 사용했다.[1]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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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페이가 보리소브나 웩슬러(Фейга Борисовна Векслер, פײגא וקסלר)의 집안인 웩슬러가는 폴란드 우치의 부유한 폴란드계 유대인 집안이었으며,[2] 아버지 아론 긴즈버그(Арон Гинзбург, אהרן גינצבורג)는 경제학자로서[3] 아론의 아버지는 예카테리노슬라프의 명망있는 소아과 의사였다.[4] 1910년 체육관에서 만난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6년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집안 간 재정적 형편의 차이로 반대에 부딫혀 결국 다른 도시에서 비밀리에 결혼했다.[5] 1918년 10월 20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데르 사샤의 출생 증명서는 도시의 수석 랍비에 의해 히브리어로 작성되었다.[6][7]

사샤가 태어난 지 3주 후 가족들은 예카테리노슬라프에서 세바스토폴로 이주했다.[8]

1947년 할리치는 콘스탄틴 이사예프(Константин Исаев)와 함께 《타이미르에서 전화 왔습니다》(Вас вызывает Таймыр)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948년 레닌그라드 국립 희극 극장에서 공연된 것을 시작으로, 2개월 후에는 모스크바 풍자극장에서 420회 공연되었으며 지방 극장에서는 1948년 3월부터 9월까지 1,349회 공연되는 등 전후 소련 희극을 대표했다.[9]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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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미르에서 전화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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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미르에서 전화 왔습니다》는 모스크바로 출장을 온 4명의 인물을 이야기의 주제로 한다. 소련의 서로 다른 지방에서 모스크바로 출장 온 이들은 호텔 '모스크바'의 13층 공동 객실에서 투숙하는데, 타이미르에서 온 듀지코프, 체르노모르스크 필하모니의 감독 키르피츠니코프, 탐보프의 양봉 전문가 바부린, 바부린의 손녀 두냐 간 4명의 상황적 전개가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는 장치이다. 주인공 듀지코프는 출장 업무를 제 때 처리하지 못할 경우 극지방의 결빙으로 항해가 중단되고 타이미르의 사람들이 장비와 물품 없이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점을 걱정하여 타이미르와의 시외 전화 연결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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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혜진 2013, 260쪽: "바르드의 이와 같은 전통은 갈리치와 명맥을 같이 한다.40) 유대인인 갈리치 는 자신의 작품에 반체제인사 탄압과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에 분노를 주로 표현했다. 그는 노동자, 죄수, 병사, 운전사, 알코올 중독자를 노래의 소재 로 사용하며, 독자적이며 개성적인 예술을 추구했다.41)"
  2. Аронов 2012, 11쪽: "Их предки Векслеры были польскими евреями и до конца XVIII века жили в городке Лодзь" (그녀의 웩슬러 가문은 18세기 전까지 우치에 살던 폴란드계 유대인 가문이었다)
  3. Аронов 2012, 11쪽: "Однако Арон не пошел по стопам отца, а стал учиться на экономиста" (그러나 아론은 아버지의 업을 따르지 않고 경제학도로서 수학했다)
  4. Аронов 2012, 11쪽: "Самуила Гинзбурга, долгое время помнили старожилы Днепропетровска, так как он до конца своих дней лечил весь город, за что был избран почетным гражданином Екатеринослава и даже получил дворянский титул." (소아과 의사였던 사무일 긴즈버그는 드니프로페트로브스크 노인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는데, 그는 평생 도시민 전체를 치료했고, 따라서 예카테리노슬라프의 명예시민으로 뽑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5. Аронов 2012, 11쪽: " В 1913 году Фейга закончила гимназию, и, казалось бы, ничего не предвещало неожиданностей, но вскоре началась Первая мировая война, и Арон Гинзбург ушел солдатом на Западный фронт. Домой вернулся лишь в конце 1916 года, и тогда же они с Фейгой решили пожениться. Однако ввиду резкого социального контраста и финансового неравенства родители с обеих сторон категорически возражали против такого союза, и поэтому влюбленные сбежали из города, тайно поженились, но вскоре вернулись в Екатеринослав за родительским прощением. Прощение было получено, и жизнь вскоре наладилась"
  6. Аронов 2012, 12쪽: "А 20 октября 1918 года у Арона и Фейги родился мальчик Саша, будущий поэт и бард Александр Галич. В справке о его рождении, оригинал которой написан на иврите, значится: «У Арона Гинзбурга и жены его Фейги 20/7 октября 1918 года родился сын, которому дано имя Александр."
  7. Аронов 2012, 12쪽: "Главным раввином города в ту пору был Леви Ицхак Шнеерсон"
  8. : "Через три недели после Сашиного рождения семья переехала из Днепропетровска в Севастополь" (사샤가 태어난 뒤 3주 후, 그의 가족은 드니프로페트로브스크에서 세바스토폴로 이주했다)
  9. 백용식 2019, 32쪽: "1947년 알렉산드르 갈리치(Александр Галич)와 콘스탄틴 이사예프(Константин Исаев)가 공동집필한 희극-익살극(комедия-шутка) 『타이미르에서 전화 왔습니다(Вас вызывает Таймыр)』는2) 전후의 소련희극을 대표한다. 이 작품은 1948년 3월 <레닌그라드 국립 희극 극장(Ленинград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театр комедии)>에서, 2개월 후에는 <모스크바 풍자극장(Московский театр сатиры)>에서 공연되었다.3) 그 후 『타이미르』 공연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모스크바 풍자극장에서 『타이미르』는 1948년 5월-1953년 사이에 420회 무대에 올랐으며, 지방극장에서는 1948년 3월-9월 한 시즌 동안 1349회 공연되었다.4)"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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