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푸르트 똥통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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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 사고에서 살아남은 하인리히 6세

에어푸르트 똥통 사고(독일어: Erfurter Latrinensturz)는 튀링겐 공국의 에어푸르트에서 1184년에 벌어진 인명사고다. 에어푸르트 성 베드로 교회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였을 때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지하실의 똥통까지 꺼지는 바람에 최소 60명의 귀족이 똥물에 익사했다.[1][2][3]

배경[편집]

하인리히 사자공의 패전 이후 튀링겐의 백작 루드비히 3세와 마인츠의 대주교 콘라트 사이에 갈등이 이어오던 도중, 폴란드 침공을 위해 튀링겐을 지나가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가 화해를 주선하게 되었다. 하인리히 6세는 두 사람과 다른 귀족들을 에어푸르트로 초청해, 만찬을 가지며 회담을 진행하려 했다.[4]

전개[편집]

그리하여 1184년 7월 25일, 신성 로마 제국 각지로부터 귀족들이 모여들었다.[5] 하지만 회담이 시작되자마자 하중을 견디지 못한 나무 바닥이 무너지고 말았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1층의 변소 오물통으로 떨어지면서 60명 가량이 익사했다.[6] 이 사고로 죽은 인물 중에는 애빈베르크의 프레데릭 백작, 튀링겐의 하인리히 백작, 헤세의 고즈마르 백작, 키르히베르크의 프레데릭 백작, 바르트부르크의 부르하르트 등이 있었다.[7] 회담을 주선했던 하인리히 6세는 돌 바닥으로 된 내실에 앉아 있었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8]

같이 보기[편집]

원문[편집]

각주[편집]

  1. “Curio #1: The Erfurter Latrinensturz”. 《The Fortweekly》. April 2008. 2019년 9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 Magnusson, Roberta J. (2003년 4월 1일). 《Water Technology in the Middle Ages: Cities, Monasteries, and Waterworks after the Roman Empire》 (영어). JHU Press. ISBN 978-0-8018-7283-9. 
  3. Arnold, Benjamin (2004년 1월 29일). 《Princes and Territories in Medieval Germany》 (영어).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52148-2. 
  4. “26. Juli 1184 : Erfurter Latrinensturz”. 《Bayerischer Rundfunk》 (독일어). 2011년 7월 26일. 
  5. “RI IV,2,4 n. 2778, Friedrich I., 1184 Juli 25–26, Erfurt : Regesta Imperii”. 《www.regesta-imperii.de》 (독일어). 2019년 9월 3일에 확인함. 
  6. Schwiebert, Ernest George (1996). 《The Reformation》 (영어). Fortress Press. ISBN 978-0-8006-2836-9. 
  7. “Chronik von St. Peter zu Erfurt” (독일어). 2010년 10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8. “RI IV,2,4 n. 2778, Friedrich I., 1184 Juli 25–26, Erfurt : Regesta Imperii”. 《www.regesta-imperii.de》 (독일어). 2019년 9월 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