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국악인)
김기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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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 1917년 11월 22일 일제강점기 경성부 |
사망 | 1986년 10월 21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68세)
성별 | 남성 |
직업 | 작곡가,교육인 |
장르 | 한국 전통음악 |
활동 시기 | 1938년 ~ 1986년 |
김기수(金琪洙, 일본식 이름:光山哲三, 1917년 11월 22일 ~ 1986년 10월 21일)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대금 연주자이자 신국악 작곡의 선두자이다. 아호는 죽헌(竹軒), 또는 순한국어로 풀어서 '대마루'라고도 한다.
생애
[편집]경성부 출생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왕실 관리를 위해 설치된 이왕직 아악부의 아악부원양성소에서 국악을 공부하였고,[1] 이왕직아악부에서 아악수와 아악사를 맡았다.[2] 1941년 획기적인 창작 국악곡으로 꼽히는 〈세우영(細雨影)〉을 작곡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악계의 토대를 닦았다. 흔히 창작국악과 국악작곡의 개척자로 불린다.[3]
1951년부터는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사, 장악과장, 악사장으로 일했다.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2] 1973년 국립국악원 원장에 임명되었고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국악에 대한 저서를 다수 저술하여 국악계의 대부격으로 활동했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호를 딴 '죽헌실'이라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지냈다.
평가
[편집]독주곡·관현악곡·무용음악·의식음악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전통 음악 악보를 채보했다. 또한 많은 교재와 국악입문서를 발간해 국악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악기를 개량하고 복원하는 등 한국 전통 악기의 개량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2]
친일 논란
[편집]성악곡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 등 친일 국악곡을 작곡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일본 건국 260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내용의 《황화만년지곡》은 이능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김기수는 이 명단에 수록된 음악인 가운데 친일자료의 편수는 많지 않으나 친일행위의 정도가 노골적이라고 평가된 경우이다.[4]
각주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자료
[편집]- 국립국악원, 전시실 - 죽헌실
- 안주연, 죽헌 김기수의 음악세계와 그의 대표작 『송광복』분석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국악고등학교 홈페이지 - 전통음악 자료실)
- “친일인명사전 명단 관련 문화계 반응 - "무책임한 발표" "친일행적 참회" 엇갈려”. 조선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5년 8월 29일. 2012년 1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11일에 확인함.
- “일제가 키웠던 '대한민국 음악가들'”. 중앙일보. 2003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