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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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판례
출생음력 1880년 3월 26일
조선 전라도 담양도호부 무이동면 도리 고비산
사망음력 1935년 10월 6일(1935-10-06)(55세)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장흥군
거주지대한제국 전라북도 김제군
국적대한제국
민족한민족
활동 기간1911년~1935년 음력 10월 6일
교파오성산교단
칭호천후(天后)[1]
태모 고수부(太母 高首婦)[2]
배우자진주 강증산(정식 재혼)
자녀없음
부모고덕삼(부)
밀양 박씨 부인(모)
친척차치구(친정 이모부)
강재득(시가 시제)
강선돌(시가 손아랫시누이)
차경석(친정 이종제)
차일혁(친정 방계 외척)
차길진(친정 방계 외척)
김광배(사돈댁)

고판례(高判禮, 1880년 음력 3월 26일~1935년 음력 10월 6일)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증산교(증산도)의 최초의 교단인 선도(仙道)의 창시자로, 증산교 성도들한테는 주로 고 수부(高 首婦)라 불리었었다. (號)는 법륜(法輪)·법륜당(法輪堂).

관향()은 장흥(長興), 또는 장택(長澤)이고, 전라도 담양 출신으로[3] 교계에서는 고수부(高首婦)로 불린다.

조선전라도 담양도호부 무이동면 도리(현재 선도리)의 고비산 아래에서 아버지 고덕삼(高德三)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무남독녀로 탄생했다. 1885년, 6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1888년, 9세 때에 전라도 정읍현 남이면 대흥리에 사는 이모부인 차치구를 따라 동학(훗날의 천도교)을 믿으며 시천주주 수련을 했다. 그 후 증산교(증산도)의 신앙 대상인 강증산(강일순) 상제를 만나 수부가 되었고, 1909년에 강증산이 어천하고 난 2년 뒤, 1911년에 강증산의 성령을 받아 도통을 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불러 모아 최초의 교단을 열었다. 교단에 따라 태모 고 수부(太母 高 首婦)님, 천후(天后)님, 사모님, 수부님 등으로 부른다. 주요 제자들로는 고민환, 이용기, 전선필, 김수열, 전준엽, 강원섭, 고춘자, 이진묵 등이 있다. 고수부는 강증산처럼 기행이적을 많이 행하였다. 강증산은 9년 천지공사를 보았고, 고수부는 10년 천지공사를 보았다. 조선 시대 말엽과,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 초기,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고수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런 자들이 갈수록 생기면서 대치성 때마다 모여 들었다. 그러나 차경석이 점차 주도권을 가지고 보천교를 세우면서 고수부는 김제 조종리로 교단을 이전하였다. 제자들이 1960년대 이후 전기를 전한 것이 다수 있다.

주요 서적[편집]

  • 《선정원경》(1962년)
  • 《고부인신정기》(1972년)
  • 《고사모신정기》(1980년)
  • 《선도신정경》
  • 《증산도 도전》

각주[편집]

  1. 모든 증산 계파 내에서 부르는 호칭.
  2. 주로, 증산도교·선도교 등에서 부르는 호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