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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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판례(高判禮, 1880년 음력 3월 26일 ~ 1935년 음력 10월 6일) 본관 장택(長澤) 고씨로 전라도 담양도호부 무이동면 도리 고비산 아래에서 탄생했다. 1888년 정읍현 남이면 대흥레에 사는 이모부인 차치구를 따라 동학을 믿으며 시천주주 수련을 했다. 강일순의 부인이자 강증산의 법통을 이었다고 한다. 초기 증산교 계열 종교인 보천교와 오성산교단 선도(仙道)를 이끌었다. 1909년 이전 강증산에게 종통대권을 전수 받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후 1909년 강증산이 어천한 이후에 강증산의 성령을 받아 도통을 하였다고 한다. 1911년 강증산이 어천한 이후 흩어졌던 제자들이 고판례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 최초의 교단이 형성되었다. 교단에 따라 고부인, 태모 고수부(太母 高首婦)님, 천후(天后), 사모님 등으로 부른다. 주요 제자들로는 고민환, 이용기, 전선필, 강대용, 강원섭, 고춘자, 이진묵, 전준엽,등이 있다. 강증산처럼 기행이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강증산은 9년 천지공사를 보았고 고수부는 10년동안 신정공사를 했다고 한다. 조선 말엽과 일제강점 초기 갓을 쓴 많은 유교인들이 고수부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정읍 대흥리에 대치성때 마다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천교 차경석이 점차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서 고수부는 오성산 교단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일본 패망 전후로 하여 전기를 전한 것이 다수 있다.

주요 서적[편집]

  • 《증산도 도전》
  • 《고부인신정기》
  • 《천후신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