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ggy Dew
<Foggy Dew>(안개 이슬)은 몇몇 아일랜드 발라드 민요와 아일랜드 애가(애도곡) 제목이다. 노래는 1916년 부활절 봉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하며, 수 많은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지배국인 대영제국을 위해 싸웠던 것을 상기시키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대영제국 대신 아일랜드를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초기 제목
[편집]아일랜드 전통민요로써 "The Foggy Dew(안개 이슬)" 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에드워드 번팅(Edward Bunting)의 아일랜드 고대 음악(The Ancient Music of Ireland) (1840), [1] 에서였다. 곡조는 오늘날 불리는 것과 다르다. (아래에서 서술할 애도곡과 저항가요의 곡조하고도 다르다.) 번팅의 곡조는 "J. Mc Knight, Belfast, 1839"를 원본으로 하지만, 같은 곡조가 이미 오 파렐의 일리언 파이프를 위한 아일랜드 민족 음악 모음집 (O'Farrell's Collection of National Irish Music for the Union Pipes) (London, 1804)에서도 발견됐으며, 해당 곡조는 "Corraga Bawn"으로 불리었다.[2]
부활절 봉기
[편집]"Foggy Dew(안개 이슬)"라는 제목을 가진 또 다른 노래는 사제인(나중에 의전사제) 포글레논의 찰스 오 네일[주 1] 과, 카운티 안트림[주 2] 이 작곡했다. [3][4] 오 네일는 머누스(Maynooth)의 성 패트릭 대학(St. Patrick's College)에서 1912년에 서품을 받았다.[5]
이 Foggy Dew 노래는 밸리캐슬의 마이클 달랏의 자매인 카틀린 달랏(Kathleen Dallat)이 소유하고 있던 원고를 원전으로 한다. 원고에는 칼 하드벡(Carl Hardebeck)이 편곡자로 밝혀져 있다.[6] 원고의 노래는 아일랜드 전통 연가(사랑노래)인 The Moorlough Shore와 같은 곡조를 갖고 있다.
Foggy Dew는 1916년 부활절 봉기와 1차 세계대전 이후 아일랜드 정치상황의 산물이다.
대략 21만명의 아일랜드인이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군에 지원하여 복무하였다.[7] 이는 아일랜드 사람들, 특히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게 했다. 그들은 영국의 전쟁노력을 폭넓게 지지했지만, 또한 전쟁의 정당화 이유 중 하나인 벨기에와 세르비아 같은 "작은 나라들의 자유"가, 당시 영국 지배 아래 놓였던 아일랜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느꼈다.[8] 1915년 갈리폴리에서, 존 레드몬드의 모병에 응한 아일랜드 청년과 중산층들이 도륙당한 일은 많은 사람들을 전쟁반대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1916년, 제임스 코놀리와 패트릭 피어스가 이끄는 아일랜드 애국주의자들이, 1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사로잡혀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중앙우체국을 포함한 더블린의 몇몇 주요 건물들을 점령하였고, 일부는 골웨이와 미스(Meath) 주의 애쉬본(Ashbourne)에서 봉기했다. 부활절 봉기였다.
봉기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봉기 지도자들의 처형이 이어졌고, 이는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전환점이 됐다. 처형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은 늘어나던 영국 정부에 대한 거리감을 더욱 늘어나게 했다.[8]
의전사제 오 네일는 Foggy Dew를 만들면서 이런 거리감 정서를, 소수의 용감한 몇 백명이 당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에 대항해 봉기한 것을 기리는 내용을 통해 반영하였다. 1919년, 그는 신 아일랜드 의회인 달 에런의 첫 회기에 참석하였다.[9] 선출된 의원들의 이름이 호명됐지만, 많은 수가 영국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결석이었다. 그들의 출석호명에 대한 응답은 faoi ghlas ag na Gaill이었는데, 이는 외국인에게 잡혀있다는 뜻이었다.[9]
이 사건은 오 네일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시간이 지난 뒤 Foggy Dew를 만들며, 부활절 봉기에 대한 이야기와 1차대전 때 영국을 위해 싸웠던 아일랜드인들이 아일랜드에 남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웠어야 했다는 당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였다. 오 네일은 이 감정을 "아일랜드의 하늘 아래서 죽는 것이 수블라(Suvla)나 수드 엘 바(Sud el Bar)에서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네" 라는 가사로 압축하였다.[9]
가사
[편집]Foggy Dew의 가사는 판본이나 구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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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 Bunting, Edward: The Ancient Music of Ireland (Dublin: Hodges & Smith, 1840), tune no. 150, p. 109; facsimile reprint, Dublin: Waltons, 1969.
- ↑ Fleischmann, Aloys (ed.): Sources of Irish Traditional Music c.1600–1855, 2 volumes (New York: Garland Publishing, 1998), ISBN 0-8240-6948-X, vol. 2, p. 717 and 1106, tunes no. 3913 and 6068.
- ↑ O'Boyle, Cathal (1973). 《Songs of the County Down》. Skerries, Co. Dublin: Gilbert Dalton. ISBN 0-86233-012-2.
- ↑ Down & Connor Diocesan Archives in Belfast, record for Father Charles O'Neill
- ↑ https://www.britishnewspaperarchive.co.uk/viewer/bl/0002318/19630520/025/0002 – British Newspaper Archive 경유.
|제목=
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 ↑ Harte, Frank (1978). 《Songs of Dublin》. Skerries, Co. Dublin: Gilbert Dalton. ISBN 0-946005-51-6.
- ↑ Keith Jeffery. Ireland and the Great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 ↑ 가 나 “History – British History in depth: Ireland and World War One”. BBC. 2012년 8월 11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History – 1916 Easter Rising – Rebel Songs (Part 4)”. BBC.
- ↑ 가 나 “wild goose”. Merriam-webster. 2022년 10월 3일에 확인함.
내용주
[편집]- ↑ Charles O’Neill from Portglenone
- ↑ County Antrim (1887–1963). 다운 앤드 코너 교구(Diocese of Down and Connor)의 사제였으며, 나중에 벨파스트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Cathedral, Belfast)의 보조사제, 말년에 킬쿠(Kilcoo)와 북아일랜드 다운 주의 뉴캐슬에서 주임사제가 됐다.
- ↑ 가 나 가톨릭 교회에서 삼종기도를 할 때 울리는 종. 각각 아침 6시, 12시, 18시 총 세 번을 울린다.
- ↑ 가 나 외국 전쟁에서 싸운 아일랜드인,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일랜드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제임스 2세의 퇴위 후 아일랜드를 떠나 프랑스 군에 복무한 아일랜드 자코뱅파들에게서 유래하였으며, 해외이주 아일랜드인을 의미하는 단어로까지 폭 넓은 의미로 쓰인다. 참고: en:Flight of the Wild Ge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