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陜川郡守 李增榮 遺愛碑)
대한민국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367호
(2001년 12월 20일 지정)
수량1기(基)
시대조선시대
관리합천군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陜川郡守 李增榮 遺愛碑)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합천군수를 지낸 적이 있는 이증영(?∼1563)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2001년 12월 20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6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편집]

이 비는 합천군수를 지낸 적이 있는 이증영(?∼1563)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은 조선 명종 14년(1559)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을 지은 이는 남명 조식(1501∼1572)이고, 글씨는 고산 황기로(1521∼1567)가 썼다. 가로 87cm, 세로 202cm, 폭 17cm 의 형식을 지녔으며 비문은 전체 13행, 각 행 평균 25자로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1554년에서 1558년까지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의 주인공 이증영은 황기로와 함께 조선 중종 29년(153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명종이 대군으로 있을 당시 그의 사부였으며, 명종이 즉위한 뒤 벼슬길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친 뒤 합천군수를 지내게 되었다. 그 뒤 1563년 청주목사 재직 중에 죽었다.

고산 황기로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렸다. 그의 글씨 가운데 초서는 여러 점 있지만, 해서의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 완성된 작품으로는 이 비석이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글을 지은 남명 조식은 경의사상(敬義思想)에 입각해 살았던 사람이므로, 비문의 내용 또한 신빙할 만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각주

[편집]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