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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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Friedrich Wilhelm IV von preussen 1847.jpg
지위
프로이센의 군주
전임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후임자 빌헬름 1세
부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신상정보
부친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모친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배우자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루도비카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IV, 1795년 8월 15일 ~ 1861년 1월 2일)는 제6대 프로이센의 국왕(재위: 1840년 ~ 1861년)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의 장남이자 후계자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이에른의 공주 엘리자베트 루도비카를 왕비로 맞이했고, 1840년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에 올랐으며, 1858년 뇌졸중 발병 후유증을 사유로 아우 빌헬름대리청정 체제를 조치하였으며, 엘리자베트 루도비카 왕비 사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사후 왕위는 대리청정을 지냈던 아우 빌헬름이 물려받았다. 그는 루터95개 논제를 붙였다는 유명한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을 새롭게 교체하였다.

19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독일 통일과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그들을 '폭도'와 폭도에게 미혹된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국민 의회의 궁극적 목표는 군주제와의 싸움이며, 그들에게 황제를 임명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며 추대를 거부했다. 결국 베를린에서 프로이센 군대는 시위대에게 발포했고, 13시간에 걸친 시가전 끝에 시위는 끝났다. 빌헬름 4세는 3월 19일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로서 1848년 독일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같이 보기[편집]

전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제6대 프로이센 왕
1840년 ~ 1861년
후임
빌헬름 1세
전임
프리데리크 빌헬름 3세
포젠 대공
1840년 - 1848년
후임
프로이센의 합병으로 행정구역으로 변화(포젠주)
전임
프레데리크 기욤 3세
뇌샤텔 공작
1840년 - 1857년
후임
뇌샤텔 위기로 인한 프로이센의 영토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