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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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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전근대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관직인 판관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 법률에 관한 용어로써의 판관에 대해서는 재판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판관(判官)은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과 일본에서도 도입되어 사용하였던 관직명이다. 시대에 따라 그 역할이 변했지만 주된 업무는 관아의 행정을 맡는 것이었다.

판관의 '판'(判)은 집행하고 처리한다는 뜻으로, '어떤 업무를 집행하는 임무'를 띤 관원이라는 뜻이며, 현대의 법관으로써의 판관과는 차이가 있다.[1]:520 즉 사법적인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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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왕조의 절도사(節度使), 관찰사(觀察使), 방어사(防御使) 등의 막하에는 모두 판관직이 있었고, 이들은 막하에 설치된 각 관서의 '장관'과 같은 성격을 지닌 요속(僚屬)이었다.

송 왕조에서는 단련사(團練使), 선무사(宣撫使), 안무사(安撫使), 제치사(制置使), 전운사(轉運使), 상평사(常平使) 등에까지 판관을 두어 각 분야에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몽골족의 원 왕조에서는 각 주(州)와 부(府)에 판관을 두었고, 이후 한족의 명 왕조에서는 주에만 판관을 두었다. 정원은 따로 없었다.[2]:187

한국의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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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판관의 이름이 보이는 것은 남북국 시대 신라와 발해에서, 신라의 경우는 성덕대왕신종(771년 제작) 명문에 종을 제작하는 데에 관여한 사람의 이름 가운데 "판관 우사록관사(右司祿館使) 급찬 김충득(金忠得), 판관 급찬 김충봉(金忠封), 판관 대나마 김여잉유(金如芿庾)" 등 판관 관직을 지닌 인물이 확인되며, 《삼국사기》에는 봉성사성전(奉聖寺成典)·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봉덕사성전(奉德寺成典)에 속한 적위(赤位)와 영묘사성전(靈廟寺成典)에 속한 상당(上堂)을 경덕왕 18년(759년) 정월 모든 관직을 한식(漢式)으로 개정할 때에 판관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12년(776년) 정월에 본래 명칭으로 복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경문왕 12년(872년)에 세워진 곡성 대안사 적인선사탑비(谷城 大安寺 寂忍禪師塔碑)의 찬자인 최하(崔賀)는 '입당사은 겸 숙위판관 한림랑'(入唐謝恩兼宿衞判官翰林郞)이라는 관직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의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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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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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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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판관은 죠(じょう) 또는 한간(はんがん)이라고 불렸다. 율령제의 사등관 가운데 제3위에 해당하는 관직인 죠의 다른 이름이 '한간'이었다.

중세 초기부터 판관직을 지닌 자들이 일종의 통칭으로 '한간'으로 불리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5위 위계를 지닌 자의 경우는 특별히 다이후한간/다이후호간(일본어: 大夫判官(たいふはんがん/たいふほうがん/たいふのほうがん))이라고 불렸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의 경우는 사에몬노이(左衛門尉) 관직을 받은 점에서 구로 호간(일본어: 九郎判官(くろう ほうがん))이라고 불렸는데, 구로(九郎)란 배행명(輩行名)으로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의 아홉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판관의 일본어 독음이 '한간'임에도 일본에서는 이 요시쓰네에 한해서는 '호간'이라고 읽었으며, 현대에는 대부분 '구로 한간'도 통용되기도 한다.

이밖에 '한간'이라는 통칭으로 불린 자들은

  • 사사키 도요(佐々木道誉) 사사키 한간(佐々木判官) 또는 사도 한간(佐渡判官)으로도 불렸다.
  • 엔야 다카사다(塩冶高貞) - 엔야 한간(일본어: 塩冶判官(えんや はんがん))으로도 불렸는데, 그의 관직이 사에몬노이(左衛門尉)였던 데에서 연유하였다.
    • 엔야 한간 - 위의 엔야 다카사다에게서 따온 《가나데혼 주신구라》(仮名手本忠臣蔵)의 등장인물로, 역사상의 아사노 내장두(浅野内匠頭)에 해당한다.

이밖에 데루테히메(照手姫)와 천마(天馬)의 전승으로 알려져 있는 오구리 한간(小栗判官)이라는 전설상의 인물도 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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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賴瑞和 (2008). 《唐代中層文官》 (중국어 정체). 台北: 聯經出版事業股份有限公司. ISBN 9789570833560.
  2. 《辭源》 (중국어 정체). 香港: 商務印書館(香港)有限公司. 1987. ISBN 96207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