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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초 비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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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산적이 되어 그의 본명이었던 '''도로테오 아랑고'''를 '''프란시스코 비야'''로 개명한다. 산적이 된 그는 훔친 재물을 판초 비야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동료들 및 지역민들의 신망을 얻었다.
 
[[1910년]], 세력이 커진 비야는 자신을 따르던 무장세력을 이끌고 [[프란시스코 I. 마데로]](Francisco Madero)가 주축이 된 [[멕시코 혁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설적인 연승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명해진 그는 멕시코 북부지방인 [[치와와 주치와와주]]에서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멕시코 북부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일약 '멕시코 민중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1차 혁명이 성공하자,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비야는, 연이은 반혁명 정권의 등장으로 동료들과 함께 다시 내전에 뛰어들었다. [[1915년]] 4월 [[셀라야 전투]]에서 최대 정적이었던 [[베누스티아노 카란사]](Venustiano Ignacio Carranza)와 [[알바로 오브레곤]]에게 패퇴하여 기반을 잃게 되었고 판초 비야는 [[미국]]의 [[우드로 윌슨]] 행정부가 카란사를 밀어준 탓에 혁명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도시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일:Columbus.jpg|thumb|300px|right|판초 비야가 공격한 후의 [[뉴멕시코 주뉴멕시코주]] [[콜롬부스]].]]
 
[[뉴멕시코 주뉴멕시코주]] 일대의 미국인 18명이 목숨을 잃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미국의 [[존 퍼싱]](John Joseph Pershing) 장군은 수천명의 병력과 함께 판초 비야의 토벌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했다.
 
카란사 정권이 붕괴되자 다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으나 [[1923년]] 7월, 반대파의 손에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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