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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처음 시작한 중학교 시절만 해도 동기생 윤제한에 밀린 185cm의 백업센터였으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키가 15cm나 자라면서 뒤늦게 주전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말하기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진정한 농구선수로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코치였던 김원호씨는김원호는 그가 골밑을 빠져나와 3점슛을 던지거나 하프라인부터 골밑까지 장거리 드리블을 시도해도 그를 책망하지 않고 "내가 가르친 제자 중 너의 슛터치가슛감각이 가장 빼어나다"라고 하면서 그를 옹호했다고 한다.
*1994년~1995년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의 박상관과 리바운드 다툼을 하다가 목부상을 당한 이 후 한국농구에 환멸을 느껴 1년간 [[NCAA]]에 유학을 간 경험이 있다(이 때의 공백 때문에 1년 후배들과 함께 1998년에 졸업한 것이다).
 
*농구대잔치 시절 득점, 리바운드, 블록으로 트리플 더블(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중 3개가 두자릿수 인 것)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론이 트리플 더블의 기준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가 두자릿 수 인 것"으로 정의한 탓에 그의 트리플 더블 기록은 비공식기록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본인이 말하기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진정한 농구선수로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코치였던 김원호씨는 그가 골밑을 빠져나와 3점슛을 던지거나 하프라인부터 골밑까지 장거리 드리블을 시도해도 그를 책망하지 않고 "내가 가르친 제자 중 너의 슛터치가 가장 빼어나다"라고 하면서 그를 옹호했다고 한다.
 
*1994년~1995년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의 박상관과 리바운드 다툼을 하다가 목부상을 당한 이 후 한국농구에 환멸을 느껴 1년간 [[NCAA]]에 유학을 간 경험이 있다(이 때의 공백 때문에 1년 후배들과 함께 1998년에 졸업한 것이다).
 
*그가 삼성의 재계약을 뿌리치고 KCC로 이적한 것은 대학 2년선배인 [[이상민]]과 한솥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상민은 KCC의 보호대상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서 그의 보상선수로 삼성에 가게 되었다.
*농구대잔치 시절 득점, 리바운드, 블록으로 트리플 더블(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중 3개가 두자릿수 인 것)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론이 트리플 더블의 기준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가 두자릿 수 인 것"으로 정의한 탓에 그의 트리플 더블 기록은 비공식기록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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