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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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仁同)을 관향(貫鄕)으로 쓰는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상장군 장금용(上將軍 張金用)계, 직제학 장계(直提學 張桂)계, 문숙공 장순손(文肅公 張順孫)계, 안동장씨 장수명(安東張氏 張壽命)계, 흥성장씨 장연좌(興城張氏 張延佐)계, 안동장씨 장용서(安東張氏 張龍瑞)계의 6계통으로 시조(始祖)를 각각 다르게 모시고 있다. 혹자는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토벌한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인 장정필(張貞弼)을 인동장씨의 도시조(都始祖)라 하지만 고증할 문헌이 없으며 상장군계나 직제학계 종중(宗中)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상장군(上將軍) 장금용(張金用)계 인동장씨

시조는 고려의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三重大匡 神虎衛 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며 그의 아들인 선(善)이 1072년(고려 문종 26년) 금오위 상장군(金吾衛 上將軍)에 올라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본관을 옥산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을 관향을 삼았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 옥산장씨는 상장군계 인동장씨와 같은 집안이다.


분파(分派)

대동보(大同譜)에는 27개 분파가 있었으나 안주파(安州派)는 북한에 거주하는 관계로 거황(居況)을 알 수 없고 성주파(城州派)는 세대(世代)가 끊어졌다고 하여 현재는 25개 분파만 전해온다.

  • 종파(宗派) : 시조 장금용의 직계 후손으로 중리파(中里派)라고도 한다.
  • 남산파(南山派) : 15세분파, 중시조(中始祖) 장우(張俁) 조선초 중직대부(中直大夫) 사천진병마첨절제사행현감(泗川鎭兵馬僉節制使行縣監) 역임
  • 진가파(眞佳派) : 16세분파, 중시조 장맹창(張孟倡) 조선초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 역임
  • 진평파(眞坪派) : 17세분파, 중시조 장신손(張信孫) 조선 중종 2년(1507) 진사(進士) 입격(入格)
  • 황상파(凰顙派) : 18세분파, 중시조 장잠(張潛) 조선 중종 진사 입격
  • 함평파(咸平派) : 6세분파, 중시조 장백림(張百林) 고려조(高麗朝)에 우참찬(右參贊)을 역임
  • 흥해파(興海派) : 6세분파, 중시조 장세규(張世圭) 고려조에 직장영동정(直長令同正) 역임
  • 화순파(和順派) : 6세분파, 중시조 장세재(張世榟) 고려조에 우교위(右校尉) 역임
  • 청안파(淸安派) : 9세분파, 중시조 장인계(張仁溪) 고려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역임
  • 영광파(靈光派) : 9세분파, 중시조 장인연(張仁璉) 고려조에 소윤(少尹) 역임
  • 청주파(淸州派) : 10세분파, 중시조 장득선(張得宣) 고려 충렬왕(忠烈王)때 사순위중랑장(司巡衛中郞將) 역임, 원명군(元明軍)의 침입을 막아 싸우다 순국한 공으로 충숙왕(忠肅王)이 평장사(平章事)로 증직(贈職)하고 기성군(箕城君)에 봉하였다.
  • 가평파(加平派) : 11세분파, 중시조 장게(張垍) 고려조에 감무(監務) 역임, 장게의 관직명을 인용하여 감무공파(監務公派)라고도 한다.
  • 경파(京派) : 13세분파, 중시조 장백(張伯) 고려말에 태상경(太常卿) 역임, 장백의 관직명을 인용하여 태상경공파(太常卿公派)라고도 한다.
  • 고흥파(高興派) : 13세분파, 중시조 장중일(張仲日) 고려말 내사(內寺)를 역임하고 조선초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 금구파(金溝派) : 14세분파, 중시조 장기건(張紀乾) 조선조(朝鮮朝) 진안현감(鎭安縣監) 역임
  • 의흥파(義興派) : 16세분파, 중시조 장맹우(張孟佑) 조선조 선무랑(宣務郞) 역임
  • 영덕파(盈德派) : 16세분파, 중시조 장맹선(張孟善)
  • 양월파(良月派) : 16세분파, 중시조 장맹순(張孟洵) 조선조 예빈사(禮賓寺) 참봉(參奉) 역임
  • 안성파(安城派) : 16세분파, 중시조 장맹희(張孟僖) 조선조 금화서(禁火署) 별좌(別坐) 역임
  • 양양파(襄陽派) : 17세분파, 중시조 장달손(張達孫) 조선조 훈도(訓導) 역임
  • 초계파(草溪派) : 17세분파, 중시조 장지손(張智孫) 조선조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역임
  • 양주파(楊州派) : 17세분파, 중시조 장석손(張碩孫) 조선조 도사(都事) 역임, 通政大夫(통정대부) 左通禮(좌통례)로 증직
  • 호명파(虎鳴派) : 18세분파, 중시조 장도(張濤)
  • 울진파(蔚珍派) : 18세분파, 중시조 장연(張演)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
  • 무안파(務安派) : 18세분파, 중시조 장부개(張傅凱) 조선 성종때 헌납(獻納), 보국숭록대부영돈영부사(輔國崇錄大夫領敦寧府事) 역임


직제학(直提學) 장계(張桂)계 인동장씨

충렬왕 31년(1305년) 국자진사(國子進士)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에 등과하여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내고 옥산공(玉山公)에 봉해졌던 장계(張桂)를 시조로 삼아 인동현(仁同縣) 발영전(拔英田)에 전거(奠居)하였다. 조선초(朝鮮初)에 5개파로 분파(分派)되어 임지(任地)에 따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榮州), 예천(醴泉), 문경(聞慶)과 충청북도(忠淸北道) 단양지역(丹陽地域)으로 옮겨 살았다.


분파(分派)

  • 송암공파(松菴公派) : 중시조 장구주(張九疇) 장계의 10세손으로 강원도 영월군수(寧越郡守) 역임하였으며 송암공파, 영월파, 군수공파라고 불리나 충북 제천시 청풍면(淸風面) 고명산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청풍파(淸風派)로도 불린다.
  • 판관공파(判官公派) : 중시조 장의손(張義孫) 장계의 7세손으로 판관(判官) 역임
  • 안양공파(安襄公派) : 중시조 장말손(張末孫) 장안량(張安良)의 삼남으로 시호(諡號)는 안양(安襄) 연복군(延福君) 조선 세조때 문과에 급제, 승문원 박사(承文院 博士),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을 거쳐 함길도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내다 1265년 여진족을 격퇴한 공으로 예조좌랑(禮曺佐郞) 경차관(敬差官)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년) 조석문(曺錫文) 등과 함께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고 내첨시첨정에 올랐다. 1470년(성종 1년) 장악원 부정, 장악원정을 거쳐 해주목사를 지내고 연복군(延福君: 연복은 인동의 별호)에 봉해졌다.
  • 주부공파(主簿公派) : 중시조 장경손(張敬孫) 장계의 7세손 장안량의 차남, 사재감 주부(司宰監 注簿)를 역임
  • 동정공파(同正公派) : 중시조 장선손(張善孫) 장계의 7세손 장안량의 장남, 승훈랑(承訓郞)으로 의정부(議政府) 첨서와 녹사(錄事)를 역임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계 인동장씨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계)

고려 충렬왕(忠烈王)때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고 후에 삼중대광도첨의(三重大匡都僉議), 정승(政丞), 춘추관사(春秋舘事)의 증직이 내린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을 시조로 하는데 이는 문충공의 8세손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이 중종 17년(1522) 병조판서(兵曹判書)때 그 아버지 증좌찬성(贈左贊成) 장중지(張重智)와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개성고씨의 묘비문에 첫 선조로 기록한 것에서 유래한다.


분파(分派)

  • 선파(僐派) 또는 생원파(生員派) : 중시조 장선(張僐) 고려때 생원(生員)이다.
  • 국로파(國老派)
  • 종손파(終孫派) 또는 도정승지공파(都政丞旨公派) : 중시조 장종손(張終孫) 조선조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좌승지(左承旨)를 역임
  • 경량파(景良派) 또는 증좌승지공파(贈左承旨公派) : 중시조 장경량(張景良) 조선조에 음보(蔭補)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연천현감(漣川縣監)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追贈)
  • 경안파(景安派) 또는 증이조판서공파(贈吏曹判書公派) : 중시조 장경안(張景安) 조선조에 음직(蔭職)으로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오르고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
  • 경복파(景福派) 또는 문장영공파 : 중시조 장경복(張景福) 조선조에 음직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
  • 계지파(季智派)
  • 사신파(士新派) 또는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 중시조 장사신(張士新) 가선행룡양위부사직(嘉善行龍驤衛副司直)
  • 만선파(萬善派) 또는 통정대부공파(通政大夫公派) : 중시조 장만선(張萬善) 통정대부(通政大夫)


안동장씨(安東張氏) 장수명(張壽命)계 인동장씨

안동장씨(安東張氏)계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태사(張太師)의 장손(長孫) 장금선(張錦善)의 후손(後孫) 장수명(張壽命)계로 본관(本貫)을 안동(安東)과 인동(仁同)으로 쓰는데 함경도(咸鏡道)의 함흥(咸興)과 영흥(永興), 북청지방(北靑地方)에 사는 장씨(張氏)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족보(族譜)를 해오다가 뒤에 인동(仁同)으로 개관(改貫)하였다.


흥성장씨(興城張氏) 장연좌(張延佐)계 인동장씨

흥성장씨(興城張氏) 시조(始祖)인 시랑(侍郞) 장유(張儒)의 둘째아들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연좌(張延佐) 계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연좌(張延佐)가 옥산군(玉山君)에 봉(封)해졌다하여 옥산장씨(玉山張氏)라 하다가 관적(貫籍)을 인동(仁同)으로 하였다고 한다. 흥성장씨(興城張氏)와 족보(族譜)를 같이하고 있다.


안동장씨(安東張氏) 장용서(張龍瑞)계 인동장씨

고려말(高麗末) 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혹은 用瑞)계(系)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과거(過去) 장연(張淵)이라고도 하고 주로 북한(北韓)의 평안도(平安道)에 많이 살았는데 8.15 해방후(解放後) 월남(越南)하였으며 본관을 옥산(玉山)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인동(仁同)으로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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