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정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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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4년 전 (Xakyntos님) - 주제: 특정판 삭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용 삭제 사유[편집]

청동거울의 제작시기는 대략 기원전 4세기 전후로 보고 있다. 기원전 400년이라고 한다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BC 356~BC 323) 대왕의 동방 원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은 고조선의 거의 끝무렵 시기이다. 위키백과의 한국의 역사에서는 상고 시대를 기원전 약 2000년 ~ 서기 300년경의 시기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즉, 이때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데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약 2000년 ~ 기원전 300년의 시기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는 한국의 고대 상고사 시기로 단군 왕검에 의해 이른바 단군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이후 한민족의 역사가 첫 장을 열었으며 이 시대를 흔히 고조선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 거울은 아무나 갖지 못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 번개 무늬, 별 무늬, 태양 무늬 등 다소 성긴 모양의 조문경(粗文鏡)에 나타나는 무늬만 봐도 그러하다. 세밀한 기하학적인 무늬로 발전한 세문경(細文鏡)도 태양의 상징을 담고 있다. 함께 출토되는 청동방울을 봐도 샤먼적인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충남 예산의 동서리 출토(1978년)의 별무늬 청동거울이 좋은 예인데 2007년 완주 갈동 5호 목관묘에서 출토된 다뉴세문경은 선의 굵기가 0.1~0.2㎜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하다. 다뉴세문경으로 기술력이 정점에 달했던 청동거울은 어느 순간 맥이 뚝 끊기고 삼한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 수입품인 한경(韓鏡)으로 대체(代替)된다. 창원 다호리 1호분 성운문경이 대표적이다.

(문단 구분은 제가 임의로 하였습니다.)
위 내용은 카테고리의 제목인 제작시기와 전혀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으로, 특히 앞부분의 알렉산더나 상고시대, 청동기시대, 민족의 역사가 첫장을 열었다는 등의 내용은 다뉴세문경의 이해와 큰 관계가 없습니다. 제작시기라는 카테고리 제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하단의 내용 또한 일반적인 청동거울에 대한 설명일 뿐 다뉴세문경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게다가 제작시기라는 카테고리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내용은 삭제하였습니다. 상단의 내용은 아예 불필요하지만 하단의 내용은 적당한 수정을 통해 본문에 적절한 카테고리를 통해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상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4일 (화) 15:48 (KST)답변

왜 관련이 없다는 것인지? 기원전 4세기 누구의 손, 어느 부족이 만들었는지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인데 님의 그 잘난 사관에 또다시 시비거리를 만들고 있군요. 참 우습군요. 매번 이런 식이니..위키는 님의 생각만이 정답인가요? 만만하게 보였는지 아예 삭제까지 하니 매번 독단처럼 반달행위라는 시비를 초래하는 거겠지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요? 늘 하는 얘기지만 나에 대한 관심을 끄고 님의 관심에 대한 편집이나 잘하세요. 紫桃꽃 (토론) 2009년 11월 24일 (화) 23:31 (KST)답변
문장을 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해당 문장에는 청동거울을 제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단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 시기가 어떤 시대인지만 적혀 있지요. 하다못해 시대에 대한 설명이 다뉴세문경과 연관되어 있기라도 하면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출토지라는 충남 일대는 고조선의 영역도 아니니 애초에 핀트 자체가 어긋나 있습니다. 귀하가 직접 쓴 문장을 한 번 곰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만하게 보기는 커녕, 내용 자체가 말이 안되기에 삭제한 것입니다. 문장 자체가 비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 글의 내용 자체도 일반적인 팩트와 상당히 많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도 알아 두십시오. --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01:12 (KST)답변

님의 실증사관에 따른 의식은 확실한 실증을 찾는 거겠지만 2400년전의 물증을 찾는 것은 정말 넌센스라는 생각이드는군요. 기원전 4세기는 상고사 부분에 해당하니 주체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시대의 연관을 부인하는 것도 같다는 생각입니다. 충남일대가 고조선 영역이 아니라는 확실한 기록도 없고 고조선 영역이라는 정확한 물증도 없지만 자꾸 얘기해봤자 님의 표현대로 비문에 해당되는 논리밖에 안된다고 생각되어 그냥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모든 편집을 님의 사관의 논리에 맞추려 하지 않길 바랍니다. 紫桃꽃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16:06 (KST)답변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물증을 요구한 적도 없고 단지 해당 내용이 본문이나 카테고리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했을 뿐입니다. 아니, 다뉴세문경의 제작시기를 말하는 카테고리에서 뜬금없이 알렉산더는 왜 등장하는 것입니까? 알렉산더를 말하지 않으면 기원전 4세기라는 시대가 설명이 불가능합니까? 전혀 불필요한 언급이죠. 게다가 그 시대가 고조선시대임을 설명하고 있을 뿐, 그것과 다뉴세문경의 관계도 전혀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고조선의 어느 유물과 관련이 있다"는 식의 내용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다뉴세문경 문서에 왜 단군왕검이니 고조선이니 하는 쓸데없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게다가 이러한 이유로 삭제를 했다 하니 귀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시지요. 누구의 손, 어느 부족이 만들었는지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 대체 귀하께서 하신 기여 어디에 다뉴세문경의 제작 주체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까? 알렉산더나 단군왕검? 차라리 이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편집했다면 귀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텐데, 6하 원칙 중 누가에 해당하는 언급 자체가 아예 없는데 저런 말씀이 가당키나 하신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16:38 (KST)답변

11월 26일 내용 삭제 사유[편집]

1958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자오양현(朝陽縣)남서쪽 약 12.5km 지점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라는 곳에서 무덤 2기가 공사중에 발견됨으로써 랴오닝성박물관을 중심으로 정식 발굴조사가 시작됐는데 1호분 부장품 중에는 잔무늬 구리거울(다뉴세문경)이 있었고 시신의 가슴팍에서는 비파형 동검 두 자루가 발견됐다. 같은 합장분으로 판단되는 2호분에서도 비파형 동검과 잔무늬 구리거울이 나왔으며 3호분 또한 잔무늬거울을 출토했다.

위 인용문은 현재 항목에 해당하는 국보 다뉴세문경에 대한 설명이 아닌 다른 잔무늬거울에 대한 설명입니다. 또한 저러한 다른 종류의 잔무늬거울에 대한 설명을 싣는 이유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랴오닝 성에서 발굴된 잔무늬거울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국보 다뉴세문경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내용은 이 항목에 서술될 필요가 없습니다. 관련성에 대한 출처가 확실한 설명을 병기하여 서술하거나 새로 문서를 만들어 서술하지 않는 한 불필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삭제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13:23 (KST)답변

1958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자오양현(朝陽縣)남서쪽 약 12.5km 지점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라는 곳에서 무덤 2기가 공사중에 발견됨으로써 랴오닝성박물관을 중심으로 정식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조사과정에서 무덤 1기가 추가로 발견됐다. 먼저 발견된 무덤은 2,3호분으로 명명됐으며 나중에 확인된 무덤이 1호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무덤들 중 1호분은 직사각형 모양으로땅을 2m 가량 파고 내려가 구덩이를 만든 다음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부부로 판단되는 남녀 시신 한 쌍과 부장품을 안치했으며 넓은 판돌로 천장을 덮었다. 부장품 중에는 잔무늬 구리거울(다뉴세문경)이 있었고 시신의 가슴팍에서는 비파형 동검 두 자루가 발견됐다. 같은 합장분으로 판단되는 2호분에서도 비파형 동검과 잔무늬 구리거울이 나왔으며 3호분 또한 잔무늬거울을 출토했다. 중국 요서(遼西) 지역 청동기문화 조명에서 일대 획을 이룬 이 십이대영자 발굴성과는 1960년대에 발굴보고서가 간행됨으로써 국내외에 널리 소개됐다.남한에서 이 유적발굴 성과는 고 김원룡 당시 서울대 교수가 1961년 「역사학보」 16호에 '십이대영자의 청동단검묘-한국 청동기문화의 기원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김 교수가 십이대영자를 주목했던 까닭은 이곳 출토 유물이 한국 청동기문화와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파형 동검과 잔무늬거울은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고루 출토되고 있었다. 십이대영자는 발견 초기에는 기원전 6-5세기에 해당하며 이를 남긴 주체는 중국문헌에 등장하는 북방 오랑캐 중 하나인 동호(東胡)라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하지만 이런 주장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축조시기는 춘추시대 초반기(대체로 기원전 8세기)로 상향조정되는 한편 이것을 남긴 주인공 또한 동호족이 아니라 고조선이라는 주장이 중국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위의 인용문은 연합뉴스 2002년 7월 3일자 기사내용중 일부이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구만..다뉴세문경이 국보라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지 않소..위의 인용문을 보더라도 분명히 고 김원룡 서울대 교수 연구논문을 참조하여 편집하였던 것을 일방적인 삭제를 해놓고 오히려 무례하게 내토론 문서에 글을 남길 이유가 무엇이오? 이곳에서도 충분히 님의 생각을 알고 있으니 지저분하게 하지말고 여기서 토론 합시다..외눈박이 사관을 가졌는지 고조선에 왜 그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소만 분명히 고 김원룡 교수를 비롯하여 중국 동포교수들의 연구논문도 있는데 그것도 안보이는 겁니까? 참으로 이해못할 사람이구만..그리고 청동유물중에 비파형동검하고 다뉴세문경이 고대 한국인들이 살던 곳에서 나온 유물로 알려져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의 다뉴세문경(잔무늬 구리거울)은 중국인들도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오? 도대체 왜 그럽니까? 왜 문서마다 따라 다니며 시비하는 거요? 내가 언제 님의 문서에 삭제한 적이 있었오? 무엇이 소명의식이고 무엇이 제대로 된 역사의식라는 겁니까? 고조선이나 단군얘기만 나오면 시비하는 것이 소명입니까? 오히려 제재를 운운하다니요? 어이가 없네요..제재하던 제소하던 신경 안쓰는데 문서는 원위치 해놓으시오..紫桃꽃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23:29 (KST)답변

이보십시오. 이 항목은 국보 제141호인 다뉴세문경에 대한 문서입니다. 귀하께서 제시하신 저 신문기사에 이 국보 다뉴세문경이라는 말이 단 한마디라도 나옵니까? 일반적인 다뉴세문경에 대해서라면 문서를 새로 만드시던가 할 일이지 왜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신문기사를 가져와서 난리를 치십니까? 그리고 애초에 귀하는 청동유물중에 비파형동검하고 다뉴세문경이 고대 한국인들이 살던 곳에서 나온 유물로 알려져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의 다뉴세문경(잔무늬 구리거울)은 중국인들도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편집이나 기여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렇게라도 편집했다면 차라리 "다뉴세문경"이라는 존재에 관한 일반적인 사실로 말할 수 있겠는데, 귀하께서 해 놓은 편집을 직접 보십시오. 대체 어떻게 읽으면 그렇게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까? 제 이해력이 부족한 겁니까? 원위치는 커녕, 귀하가 한 편집은 이 문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니 조금도 손을 댈 가치가 없습니다. 유념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7일 (금) 00:40 (KST)답변

이젠 국보 제141호를 가지고 늘어지네요..다뉴세문경은 국보 제141호은 맞지만 이문서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이 아니지 않소? 무슨 어거지입니까? 말같지 않은 논리로 말하는 님이 이상하네요..이해력? 그리 이해력이 많아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는 겁니까? 왜 발견된 다뉴세문경마다 문서를 만들라하지요..어처구니가 없네요..紫桃꽃 (토론) 2009년 11월 27일 (금) 01:03 (KST)답변

이 문서의 내용을 좀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시오. 이 문서는 국보 다뉴세문경에 대한 문서요. 애초에 다른 다뉴세문경이나 청동거울에 대한 문서라면 따로 만들던가 하면 될 일입니다. 다뉴세문경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붙어 있는 틀 안보이십니까? 개요라고 되어 있는 문서에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국보 다뉴세문경의 특징 안보이십니까? 애초에 이 문서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 대한 문서였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편집은 애초에 일반 다뉴세문경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편집입니다. 지금 귀하의 편집 내용을 한 번 읽어 보세요. 문단의 주제가 다뉴세문경입니까? 아니라는 거 귀하가 더 잘 아실텐데요? 문단의 주체는 청동기 시대의 편년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지 다뉴세문경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청동기 편년이 이러이러하니 다뉴세문경 연대를 조금 더 올려 잡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편집이라도 하셨으면 모르겠습니다. 아예 다뉴세문경이 주제가 아닌 문단을 적어 놓고서 무슨 어처구니를 말씀하십니까? 국어 안배우셨습니까? 본문과 관련 없는 편집을 하시지 말라고 제가 수차례 말씀 드렸습니다. 이런 반달행위 그만 두십시오. 더불어 토론에서 합의를 거친 후에 편집하시기 바랍니다. 삭제 대상으로 토론되고 있는 내용이 본문에 무단으로 올려지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7일 (금) 09:55 (KST)답변
추가합니다. 카테고리의 제목을 제작시기와 제작주체라고 바꾸셨더군요. 귀하의 편집 내용 어디에도 제작 주체에 대한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카테고리의 제목을 바꾸는 것은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귀하의 편집을 그대로 읽어보자면, 십이대영자 유적의 주체는 동호가 아니라 고조선이다는 내용입니다. 다뉴세문경의 제작 추체에 대한 내용도 아닐 뿐더러, 그 자체로도 이미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백과사전에 싣는 행태가 과연 올바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본 문서와 무관한 토론이 지속되고 있어 제 사용자토론으로 이동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27일 (금) 18:52 (KST)답변

임의대로 옮기는 반달행위 중지하시오[편집]

멋대로 옮기는 행위는 명백한 반달행위입니다..삭제, 왜곡, 편집도 모잘라서 멋대로 행동하는군요..무례합니다..紫桃꽃 (토론) 2009년 11월 27일 (금) 19:39 (KST)답변

특정판 삭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편집]

사용자:HanKooKin의 편집이 부산일보 신문기사를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저작권 위반이며 특정판 삭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해당판 이후를 모두 삭제하게 되면 일부 정상적인 편집이 날아갈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의견을 구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12월 23일 (수) 15:32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