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쌍성총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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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7개월 전 (고려국경님) - 주제: 쌍성총관부 위치

쌍성총관부 위치[편집]

《위치》 중국 톄링시 있는 쌍성총관부 ㅡㅡ 고려사 기록 ㅡㅡ금(金)의 요동(遼東) 함주로(咸州路) 부근의 심주(瀋州)에 쌍성현(雙城縣)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본국의 함주 근처 화주의 옛날에 쌓은 작은 성 2개를 모호하게 주청하여 마침내 화주를 가지고 쌍성이라고 모칭하고, 조휘를 쌍성총관(雙城摠管)으로,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아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카이위안시 (톄링시)옮겨졌다. 이후 발해가 통치했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요나라는 이곳에 함주(咸州)와 동주(銅州)를 설치했다. 거란에 귀부했던 숙여진중 요양이북에 살던 북여진의 중심지였다. 금나라는 이곳에 함평로를 설치했다. 원나라가 무너지고 만주를 차지한 여진족들중 훌룬국이 이곳을 수도로... 함평로(咸平路)는 금나라가 설치한 로중 하나로 지금의 톄링 시, 쓰핑 시 일대를 통치했다. 금나라 초에 함주로(咸州路)라고 칭했다가 1150년(천덕 8년), 요나라 동경도 동주의 속주로 있었던 함주(咸州)를 지금의 이름으로 승격시켰다. 안동군절도사(安東軍節度使)를 두었다... 톄링시(철령) 발해의 지배하에 부주(富州)로 개칭했다. 917년, 요나라는 은주(銀州)로 개칭했고 명나라 때 은에 철령위가 설치되었으며, 1664년에 청나라에 의해 철령위가 폐지되고 철령현이 설치되었다. 함평부 금나라 초에 함주로(咸州路)라고 칭했다가 1150년(천덕 8년), 요나라 동경도 동주의 속주로 있었던 함주(咸州)를 지금의 이름으로 승격시켰다. 안동군절도사(安東軍節度使)를 두었다. 후에 총관부로 승격시키고 요동로전운사(遼東路轉運司), 요동함평로제형사(東京咸平路提刑司)를 두었다. 56,404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8현을 두었 고려국경 (토론) 2023년 9월 18일 (월) 20:45 (KST)답변